[ Architecture, Technology ,Web ] SSO(Single Sign On) 그리고 SAML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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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프로젝트 내부에서 어쩌다보니  유저 인증 관련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고, 해야하는 업무는 내부에 사용했던 적이 없던  새로운 개발 플랫폼에서  SSO의 프로토콜 중  SAML을 이용해 앱의 인증을 구현해야만 했다. SSO를 생각해본적 조차 없는 상황에 이를 새로운 개발 플랫폼에 도입해야 했기 때문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으나 구현에 성공하였으며 덕분에 SSO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그러한 과정에서 나온 지식들과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SSO에 대한 정의 먼저 사전적 정의 부터 살펴보자. 다만, 기술적인 용어다보니 자주 사용하는 옥스포드 사전에 정의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검색으로 찾을 수 있는 정의를 몇 가지 살펴보고 교차 검증을 해보자. 첫 번째 정의를 살펴보자. Single sign-on (SSO) is an identification method that enables users to log in to multiple applications and websites with one set of credentials.  SSO는 웹사이트에서 한 번의 인증(one set of credentials)으로 복수의 어플리케이션에 로그인 할 수 있는 인증(identification) 방법(method) 이다. 두 번째는 위키피디아의 정의이다. Single sign-on (SSO) is an authentication scheme that allows a user to log in with a single ID to any of several related, yet independent, software systems. SSO는 독립적이지만 연관되어있는 몇몇 소프트웨어에 대해 하나의 ID로 로그인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인증 구조(scheme) 세부 설명에 조금 차이가 있어 보이지만 전체적인 틀은 매우 비슷해 보인다.  몇 가지 포인트가 되는 단어를 추출해 이를 연결해보자면 아래와 같은 의미를 산출 할 수 있다. 독립적이지만 연관되어 있

[ 생각 ]텍스트(책)로 받아들이는 지식과 이미지(유튜브)로 받아들이는 지식에 대해


시작하기전에
나는 일반적으로 부르는 영상매체라는 것을 이미지 매체라 부른다.

이유는 간단하다.

영상 매체도 결국은 이미지를 빠르게 45장, 60장, 90장 겹쳐서 만든 것이고,
이를 FPS(Frame Per Second)라는 것과
거기에 음성 데이터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상도 또한 이미지라는 큰 틀 안에 있는 것에 불과하다

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여기서 말하는 이미지라는 것은
그림과 같은 이미지와 영상 이 두 가지를 포함한 개념이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나는 모든 지식을 책으로 부터 배우던 세대
그리고 현재, 지식을 유튜브와 같은 이미지로 배우던 세대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세대다.

그래서 나는 어린시절 책이라는 텍스트가 가득한 매체를 통해 지식을 습득했고,

내가 대학생 시절에는 책이라는 텍스트와 인터넷(전자책 포함)의 텍스트를,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책이라는 텍스트와 인터넷(전자책 포함)의 텍스트
그리고 유튜브라는 이미지 매체를 이용해 지식을 습득하고 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 유튜브라는 매체에 익숙한 세대들은
이미지로서 지식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을탠데,
단순이 텍스트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비효율적일까?

정말로 비효율적이라면,
어느 부분이 비효율적이며,
혹시 텍스트로 지식을 받아들인다면
유튜브로 받아드리는 것보다 어떤 면에서는 좋은점이 있지 않을까?

만약 압도적으로 유튜브로 받아들이는 지식이 더 효율적이라면
텍스트로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은 버려야 할까?

라는 생각을 최근에 했었다.

그리고 이전에 종이책과 전자책에 대한 고찰을 해보았고,
오늘은 최종적으로 텍스트로 받아드리는 지식과
이미지로 받아들이는 지식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위에서 이야기 했듯이,
나는 이 두 가지 매체에 매우 익숙한 세대이다.

물론 같은 세대라고 해도 조금씩 의견은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 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유튜브라는 매체에 익숙한 세대들은 이미지로서 지식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을탠데,
단순이 텍스트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비효율적일까?

정말로 비효율적이라면, 어느 부분이 비효율적이며, 혹시 텍스트로 지식을 받아들인다면
유튜브로 받아드리는 것보다 어떤 면에서는 좋은점이 있지 않을까?

만약 압도적으로 유튜브로 받아들이는 지식이 더 효율적이라면
텍스트로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은 버려야 할까? 」

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먼저 단순히 텍스트로 지식을 습득한다는 것이 비효율적일까?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사실 텍스트라는 것은 익숙하지 않다면,
매우 비효율적인 매체일지도 모른다.

특히 외국어 텍스트를 한국어로 번역한 텍스트일 경우 더더욱 그렇다.

언어에는 그 나라의 특유 문화가 담겨져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언어로 번역할 때 매우 힘들다.

왜냐하면 살아 있는 언어들은 
그 단어의 의미 뿐만 아니라 그 의미를 담고 있는
기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의미라 하더라도
기저가 다르면 제대로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즉, 뉘앙스가 다르게 된다.

따라서 실제 그 번역한 내용으로 읽는 사람들은 
번역에 대한 이해하기가 힘들다.

이런 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 
바로 유머 이다.

그래서 확실히 이해하려면 그 문화를 이해하고 있어야 하며,
가급적이면 그 나라의 언어로 직접 이해하는게 가장 최고의 방법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모든 나라의 언어를 익힐 순 없다.

다른 언어를 배운다는 것이 쉽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노력만 한다면 무엇이든지 가능하다는 
낙관론자들에게는 조금 못마땅한 이야기겠지만 말이다.

충분한 동기와 이를 통한 성취감이라는 보상 체계 사이클이 돌지 않는다면 

그들이 이야기하는 침을 튀며 이야기하는 
노력을 아무리 쏟아부어도 유의미한 보상을 얻기란 
넓은 모례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다.

어쨋든

이러한 사실 때문에 텍스트에 익숙하지 않거나,
외국어로 번역된 텍스트가 익숙하지 않는사람들에게는
텍스트로 지식을 받아 들이는 것이 썩 내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훌륭한 지식이 담겨져있는 텍스트는
영어라는 언어로 작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어로 작성되어 있다면, 비교적 쉬울것이라 생각한다)

단순히 그 지식만을 얻기 위한 사람들이라면 더 더욱 그렇다.

사고 과정의 결과물인 지식만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텍스트는 읽기도 힘들며, 번거로울 뿐이다.

따라서 이런 경우라면 확실히 텍스트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매우 비효율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 이미지로 받아들이는 것이 매우 효율적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지식은 그 지식의 자체가 의미가 있는것은 아니다.

어떤 과정을 통해 그 지식에 도달 했는지와
결론적으로 그 지식에 도달했다.

라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우리는 전기라는 것에 매우 익숙하다.
그런 전기를 사용해 사용하는 전자기기에 익숙하다.

그리고 그런 기기들이 전기를 이용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도 물론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내부에 정확히 
어떻게 전기가 돌아가고 있는지 알지는 못한다.

우리는 한 지식으로서 전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지식은 의미가 없다.

전기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지만 의미있는 지식은 
이 전자기기에 전기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우리가 전자기기를 이용할 수 있는지,

그리고 전기라는 것은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하고,
최종적으로 이를 이용해 솔루션을 제시할 수 있어야 가치있는 지식이 된다.

그 전기라는 것을 만들기 위해 실험했던
과거의 과학자들과,
그 시대의 배경,
그리고 결과적으로 전기라는 개념을 찾아낸 사고 과정과
이런 전기를 기반으로 현실의 문제을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시할 수 있어야
그 지식이 최대효용을 가지며, 세공된 보석처럼 스스로 빛을 낼 수 있다.

물론 수 많은 단순한 지식 조각이 모여
하나의 빛을 낼 수 는 있으나 그럴싸한 솔루션일뿐이며
조금만 한계에 다다르면 바로 유리처럼 깨지기 십상이다.

빼곡히 적혀있는 텍스트는 저자의 사고 과정과 
이로서 나타난 결론(지식)이라는 사이클을 비교적 적은 비용을 들여 설명할 수 있다.

영상으로 제공하려면 몇 시간을 걸려 설명해야 하지만,
텍스트로 바꾸면 단 몇 페이지만 할애하면 가능하다.
(물론 단 몇 페이지가 100페이지가 될 수도 있지만)

이런 의미에서 텍스트로 지식을 습득한다는 것이
이미지로서 지식을 습득하는 것보다 매우 효율적이다.

사고 과정 부터 시작해 결론까지 
저자의 생각을 바로 눈 앞에서 맛볼 수 있다.

그럼 여기서 단순히 텍스트로서 지식을 습득 하는 것이
매우 비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그렇다고 단순히 텍스트로서 지식을 습득 하는 것이
매우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도 않다.

결국 어떤 식으로 지식을 받아들일껀가에 따라 달렸다.

자신에게 딱히 세세한 것 까지 알 필요 없이,
단순히 그 지식 자체를 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면,
이미지로 받아들이는 것이 효율적일 수도 있다.

반대로 세세한 것 까지 알아야한다면,
텍스트로 받아들이는 것이 효율적일 수 도 있다.

다른면에서 한번 더 살펴보자.

텍스트로 읽으면
텍스트를 받아들임으로써 자신만의 상상을 하게 된다.

애덤 스미스의 책을 읽는 다면,
마치 애덤 스미스가 자신의 뇌에서 책을 읽어 주는 것 처럼,
마치 눈앞에 애덤 스미스가 있는 것 처럼 상상하며 읽는다.

번역일 지라도,
어떤 사실에 대해 그거 어떤 이유에서,
어떤 사고방식으로 그 결론에 도달했는지도 알 수 있다.

그리고 말도 안되는 부분을 자신이 지적하며, 비판하는 상상도 한다.

텍스트로 읽게 되면 비교적 자신이라는 시점에서 판단해볼 수 있다.

하지만 이미지는 어떨까?

이미지는 상상을 방해한다.

왜냐하면 머리속에는 그 이미지로 가득찰 것이기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를 설명하는 화자의 이미지로 말이다.

따라서 이미지로 애덤 스미스의 책을 받아들인다면,
애덤 스미스 대신에 머리속에는 그 사람이 가득 그려질 것이다.

그는 애덤 스미스가 아니다.
단지 애덤 스미스의 생각을 자신만의 지식으로 가공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뿐 이다.

애덤 스미스에게 받아들인 가공된 지식은 전달자의 자신의 이미지로 표현될 것이며,
음성을 통해 그 가공된 지식의 설득력을 높일 것이다.

이미지로 전달하려면 가급적 빨리 전달해야하기 때문에
많은 부분이 편집되어 전달될 가능성이 높으며,
(지금의 영상 매체 유튜브를 보면)

심지어 말하는이에 따라 애덤스미스의 생각이 아닌,
전달자가 생각하는 애덤스미스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 전달될 가능성이 높다.

사실 나도 이미지로 지식을 받아드릴 때가 최근에 늘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과거에 비교해 이미지로 지식을 받아들일 때가 늘었다는 것이지,
텍스트로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이 적어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미지로 지식을 받아드렸을 때의 이점은 확실히 존재한다.

확실히 빠르다.

한 사람이 이미지로 지식을 가공해줘서 전달해주고,

단순히 시각으로 이해해야하는 텍스트와 다르게,
유튜브와 같은 이미지 매체들은
소리를 통해서도 정보가 들어오기 때문에 이해가 빠르게 된다.

하지만 받아들일때 굉장히 조심해서 받아 들이려고한다.

애초에 그것이 전부 사실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사실이라고 생각해도 그것이 일부 잘못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서
틀릴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둔다.

물론 텍스트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지만,
이미지로 받아들일 때는 그 여지를 더욱더 남겨두는 편이다.

따라서 텍스트로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 보다,
이미지로서 지식을 받아들일때의 이해속도가 압도적으로 빠르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텍스트로 지식을 받아들였을 때의 그 힘도
이미지와 비교했을 때 압도적이다.

세계의 흐름이라는 거대한 파도는
현대인들에게 텍스트보다, 이미지로 지식을 받아드리라고 외치고 있다.

그리고 이 파도는 텍스트로 지식을 받아들이는
이 방법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

텍스트보다 이미지에 익숙한 세대들은
점점 지식을 이미지로 받아 들일 것이며,

이는 지식을 받아들이는 한 방법으로서 대세가 될 것이다.
(과거 책이라는 텍스트 매체가 그랬듯이,
크게 본다면 인간이 진보해왔을 때 그래왔듯이)

하지만 텍스트로 지식을 받아들일 때보다 더욱 조심해야 한다.

이미지는 상상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상상의 여지를 주지 않기 때문에
어떤 것에 대해 비판적인 사고를 하기 힘들게 한다.

비판적인 사고가 어려워진다면,
이는 어떤 지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만든다.

자유롭지 못하다면 
결국 인간의 상상력은 그만큼 제한되며
그 만큼 인간의 포텐셜은 줄어 든다. 

물론 이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그렇다면 모든 것을 책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의문과 함께 
이미지로 받아들이는 지식을 받아들이려는 사람들을 
못 마땅하게 보거나 심하면 여기에서 선민의식을 느끼고 
자신의 비열한 우월감을 만족시키려 할 것 이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는 하나의 패러다임이라는 것이며, 
이러한 패러다임이 불게 된 것은 
사회의 발전이 점점 빨라지고 
지금 사회의 발전 속도는 인간의 학습 속도를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발전 속도는 더욱 분업화가 가속화 되고 깊어지며
깊어진 분업화에 따라 사회 내부에서 개인들은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의 수가 너무나도 늘어났고, 깊이도 더욱 깊어져만 갔다.

그렇기에 이미지 매체라는 패러다임은 
이런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로 인해 위에서 언급한 
지식을 뛰어넘어 솔루션을 제시하는 것은 
결국 기업가의 전유물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따라서 자신의 우월감을 만족시키려 하는 
비열한 사람들의 말은 귀를 기울일 필요는 전혀 없다.

그들은 자신의 우월함이라는 비열한 욕망을 
타인으로 부터 얻기 위한 저열한 의도가 숨어있을 뿐이다.

결국 이러한 거부할 수 없는 패러다임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목적에 맞게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이다.

텍스트로 받아들이는 지식은 무겁고 유용하지만
시간을 너무 많이 소비 한다.

반대로 이미지로 받아들이는 지식은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지만 너무 가볍다.

하지만 사회는 현대인들에게 더 많은, 더 깊은 지식을 요구 한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해 
마치 도시 전설 처럼 내려오는 
하루에 3시간만 자고 지식을 습득한다면 이에 가까워 질 수는 있을 것이다.

이 도시 전설이 사실인지 아닌지
어떻게 이를 유지하기 위한 동기와 성취감이라는 
사이클을 얻을 수있는 지에 대해서는 둘째로 치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모든 시간을 지식에 쏟아붓는다면 결국 인간성을 잃게 될 것이다.

지식의 탐구를 통해 솔루션에 다가갔다고 한들
가지고 있는 인간성이 너무 부족해 
결국에 협력할 수 없다면, 타인이 그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그 솔루션은 빛을 얻기도 전에 사회의 구석진 곳에 내버려질 것 이다.

지식은 유대감이라는 욕망을 만족시켜줄 수 없으며,
유대감을 채우지 못한 인간이 도달하는 곳은 결국
퀴퀴하고 칙칙한 골방의 스크루지 영감이 될 뿐이다.

결국 이 문제에 대해서는 각 개인들의 손에 달려 있다.

시간을 포함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리소스를 저울질해 
어느 곳에 무게를 둘 것인지를 말이다.

선민의식을 통해 자신의 우월감을 만족시키려하는 
비열한 인간들의 말 처럼 
텍스트로 받아들이는 지식의 무게가 의미 있을 정도로 
더 무게감이 있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순히 지식을 탐구하기만을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무게가 더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욕망을 가지고 있고
이러한 욕망을 통해 진보한 인간은 
그런 욕망을 가지고 있지 않은 타인의 부족한 점을 채워 준다.

인간의 사회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유대감이라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도 있지만,
더 큰 유용함은 결국은 타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자신이 지식을 탐구하는데에 무게를 둔다고 해서
비열한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업신 여기는 것이 서로에게 얼마나 이득이 되겠는가?

인간에겐 해야하는 것들이 너무 많고
(특히 현대에 들어서는 더더욱)
인간에게 주어진 자원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도시 전설을 믿지 않는 현대 구 인류라면 더더욱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한 사람들의 말을 귀기울이는 것 보다 
이러한 사실로 자신에게 주어진 자원이 얼마나 있으며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고

자신의 꿈과 미래 등과 같은 가장 중요한 것들을 처리해나가면서
그때 그때 해야만 하는 과업들을 해결해 낸다면 

즉, 어제보다 나은 내일로서 
옛것에 새것을 더한다는 의미에 진보를 이룬다면

가지고 있는 리소스의 양과 관계 없이 
지식이던 꿈이던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을 텍스트로 받아들이건 
이미지로 받아들이건 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지식을 얼마나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논의보다
지식을 어떻게 사용해 솔루션을 제시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2020.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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