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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 Technology, Essay - Intuition ] Chat GTP시대의 도래와 생각하는 방식에 대해 : 개발자의 미래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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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올해도 반쯤 지나 뜨거운 여름이 다가왔다. 굉장히 빠르게 지나간듯한 느낌이 드는데  아마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렇게 나쁜 신호는 아닐 것 이다. 괴로운 시간이였다면, 1초가 1년 같이 느껴졌을테니 말이다. 더위에 매우 약한 나에게 있어서는 지옥과 같은 시기이기도 하지만 늘 그렇던 것 처럼 에어컨 덕분에 어찌저찌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어쨋든, 이번에는 저번의 에세이 주제, Chat GTP시대의 도래와 생각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에 이어서  과연 개발자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려고 한다. 어쩌면 모두가 인식하고 있듯이 지금 2025년 현재,  꽤나 중요한 시기에 직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생성AI의 발전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그에 따라 실제 업무에서도 빠르게 사용되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발자에게 있어서 가장 두려운 점은  당연히 생성AI에 의해 개발자가 대체될 것 이라는 두려움일 것 이다. 이는 개발자에게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말이다. 아마 필드에서 나와 같이 일하고 있거나  개발자로서 직업을 가지려는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생각해볼법한 주제라 생각 한다. 물론 미래가 정확히 어떻게 될 지는 알 수 없으나  이런 생각을 함으로써 몇 가지 힌트는 얻게 될지도 모르니  만약 얻게 된다면 미래에 대한 방향성을 조금이나마 올바른 쪽으로 돌릴 수 있을 것 이다. 이 글을 끝맽을 때는 조금이라도 힌트에 도달하기를 바란다. 과거의 역사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일반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역사를 보는 것 이다. 물론 이러한 역사를 해결책을 찾는거에 대한 전제조건은  우리가 '구 인류'라는 전제조건이 있었을 때 의미가 있다. 그러니깐 현대인도 기원전 8세기의 고대 로마인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예컨데...

[ 생각 ] 내면의 어두운 면을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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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나 만화와 같은 스토리가 존재하는 매체에서  선한 주인공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구간이 존재하는데  흔히 이는 복수라는 감정을 이용해서 드러내고는 한다. 이는 현실에서도 마찬가지 인데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  이 어두운 면은 가학성이나 폭력성과 같은 것들이 그러한 것 들 중에 속 한다. 이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들이며  어떤 이들은 이를 선과 악의 이분법에 의해 악으로 규정해  이 세상에서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말살하려는 시도를 하려고 하지만 이런 어둠들은 생존에 필수 불가결한 '사회성'이라는 성향에 의해 가려져 있을 뿐 사람마다 차이는 있을지 언정  가학성과 폭력성과 같은 것들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감추려고는 할 수 있어도 있는 것을 없던 걸로 만들 수 는 없다. 왜냐하면 사회성은 필요에 의해  개성 위에 사회의 관습이라는 천을 덮어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잘 알려져 있어  어릴 적 부터의 철저한 교육(나쁘게 말한다면 세뇌에 가까울 것이다)에 의해  잘 구축되어 있는 현대 시스템에 의해, 그리고 이러한 어두운 면을 표출하는 것에 대한  높아진 리스크에 때문에 잘 통제되어 있는 듯 보이지만 이러한 어두운 면 중에서  '자기 기만'은 통제되어 있지 않은듯 싶다. 외적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이 자기 기만의 가장 큰 문제점은  다른 내면의 어두운 면들과 자기 기만이 합쳐지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매우 나쁜 의미로 말이다. 예컨데,  폭력성과 자기 기만이 합쳐지면 폭력의 대한 정당성을 어떻게 해서든 부여하려고 시도 할 것 이다. 만약 그러한 정당성을 찾을 수 없다 하더라도 또 한번 자기 기만을 해서라도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 할 것 이다.  이 자기 기만이라는 것은 마치 사정권내에 들어와 있는  미사일 들을 격추시키는 방어 시...

[ 생각 ] 성공을 이루고 싶다면 리스크를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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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한국 내에서 누군가에게 꿈이 무엇인가요라고 묻는다면  대게 '성공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을 것 이다. 물론 이에 대한 속내는  대게 돈을 많이 벌고 싶다에 가깝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성공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으며 그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그에 따른 이득은 어떠한지 즉, 리스크는 어떠한지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는다. 먼저 성공이 무엇인지에 대한 것은  사람마다 매우 상이하기 때문에 깊은 대화를 나누어볼 필요가 있는데 예컨데 위에서 이야기한 단순히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말 또한  자신의 현재 사회적 위치에 따라 매우 달라질 수 있을 것 이다. 어린아이라면 몇 만원짜리 장난감을 사기 위해 부모의 허드렛일을 하는데에 마다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며 사회 초년생이라면  그동안 억눌려있던 소유의 욕망을 풀어내기 위해 중년 즈음 되면  주식, 부동산과 같은 자산을 얻어내기 위해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가 싫어하는 것을 하더라도 말이다. 따라서 자신의 현재의 위치에 따라 성공이란 매우 상이할 수 있다. 중년에게 있어서 하루 몇 시간이라면 벌어낼 수 있는 푼 돈이  어린아이에게 있어서는 성공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인간에게  두발로 걷기란 숨을 쉬는 것과도 같지만 막 태어난 갓난아기에게는 매우 큰 도전과도 같이 말이다. 나에게도 어린 시절에 과자를 사먹기 위해  설거지를 하며 500원을 용돈으로 받았을 때의 기쁨은 잊기가 힘들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500원이라는 돈은  그 만큼의 기쁨, 만족감과 같은 가치를 얻어낼 수가 없다. 물론 어떠한 사람들은  그게 무슨 성공이냐고 할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의 이야기는 별로 논할 가치는 없을 것 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스스로의  비열한 면을 만족시키기 위해 그러한 말을 할 뿐,  대화를 하고 싶거나...

[ 생각 ] 우리라는 단어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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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라는 단어에 대해 위화감을 느낀 적이 있는가? 아마 크게 느끼지 못할 것 이다. 특히 한국이라는 나라 특성 상 더더욱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스스로의 국가를 부를 때 매우 당연하게도 '우리'나라라고 부르기 때문이고 실제 생활에서도 우리라는 단어는  우리 반, 우리 집, 우리 회사, 우리 사회 등  꽤나 쉽게 사용 되기 때문이다. 즉, 적어도 한국에서는  우리라는 단어의 경계가 매우 모호하다. 다만 문제는  사회 문제가 이러한 단어의 경계가  모호함에 따라 나타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단어의 경계가 모호하니  사회에서 정말 가치가 큰 것들은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배려, 혁신, 용서, 나눔, 정의 등이 이러한 처지에 놓여있다. 이미 몇 가지는 찬란했던 빛을 잃어버린 것으로 보인다. 위에 언급 했던 배려를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배려란 쉽게 할 수 없는 행위이다. 애초에 마음에서 우러러나오는 진정한 배려란 쉽게 나올 수 없는 행동이다. (배려가 일상 생활에서 쉽게 나온다고  그리고 그래야만 한다고 믿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갑자기 현대에 들어와서 인류가  배려심이 넘쳐흐르게 되었다고 하기에는  근거를 찾기가 매우 힘들기에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배려를 하게 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향해 박수를 치거나 마음속으로 경외심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리가 아픈 노인이나 임산부는 물론이고 몸이 편치 않아 보이는 남성 까지  누가 봐도 불편한 기색이 보이는 사람에게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선뜻 자신이 앉고 있는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이런 배려에 속 한다. 물론 비교적 과거에는 말이다. 또한 전제 조건은  주변의 눈치를 살펴서 행동하거나 그러한 문화가 있지 않는 조건 하에서 이다. 만약에 다수의 사람이 눈치를 주거나  사회 문화에 의해 혹은  긴 시간 동안 주입에 ...

[ Essay - Intuition, 생각 ] 리스크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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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랫만에 생각 카테고리로 글을 작성하는 것 같다. 그 동안은 글을 작성한다면  에세이를 중점으로 작성했으니 말이다. 에세이를 작성하는 것은 분명 즐겁지만,  어느 정도 형식이 있고 그 만큼 무겁기 때문에  작성하는데 시간이 꽤 나 걸린다. 무엇보다 이전과 다르게  이러한 글을 작성하는 것보다 일에 대한 중요도와 우선도가 높아졌기 때문인 것이 크다.  이에 더해 최근에는 작성하고 있는 에세이들은  개인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해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있다. 어쨋든 이번에는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어보자. 만약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 존재한다고 한다면 나에게 그 창 중 하나가 바로 리스크 이다. 내가 하는 행동들의 대부분은 리스크가 매우 크다. 왜냐하면 나는 좋은 의미에서도 나쁜 의미에서도  보통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하는  대부분의 행동들은 리스크가 클 수 밖에 없다. 그것을 제외하더라도  외국에 살아가는 것 또한  사실은 무척이나 리스크가 큰 행위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 리스크가 현실로 다가온 경우는 많다. 세상을 리스크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가장 큰 이점은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비가 된다는 것 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상황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 만으로도 굉장한 이점이다. 그렇지 않은가? 사람이 가장 크게 무너질 때는 예측하지 못할 때 아니겠는가? 예측하지 못한 상황들은  언제나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고 초조하게 만들어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상황에 대해 예측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리스크 관점에서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대비하거나 생각 해본다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가 된다. 리스크 관점에서: 법에 대해 예컨데 법에 대해 이를 생각해보자.  복잡한 법까지 갈 것 없이  일상 생활에서의 예로도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 예컨데,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