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에세이를 쓰는 것도
어느정도 정립되었기 때문에
자유롭게 쓰는 '생각'과
조금은 형식을 갖춘 '에세이'로 나누어서 작성하려고 한다.
그리고 카테고리 '생각'의 경우는 수정이 거의 없지만,
카테고리 '에세이'의 경우 최하단에
간단한 이력을 명시해 놓을 예정이며,
에세이의 수정시 계속해서 업데이트 될 예정이다.
따라서 이후의 글의 카테고리 또한
그렇게 나뉘어질 예정이다.
그리고 이에 따른
대망의 첫번째 에세이로
나는 툰베리가 주목 받는 것이
사회에 어떤 것을 시사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행동하고 선택하는 것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고
그런 이유에는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어떤 이유가
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툰베리와 그의 지지자들을 보고
'멍청하다'느니 '세상물정을 모른다'느니
'저런 멍청한 꼬맹이가 노벨 평화상의 후보라니!' 라며
마치 세상이 곧 멸망할 것 처럼 이야기하면서
치를 떨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위에서도 살짝 언급했듯이
나는 모든 행동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것이 정당한 이유이던 정당하지 않던간에
많은 사람들이 툰베리를 지지하는 이유는
아마 어떤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또한 밀의 '자유'라는 이름하에
그들이 가지는 생각은 정당하다.
물론 그들을 비판하는 것 또한
정당한것은 말할것도 없다.
하지만, 이런것들을 다 떠나서
그 이유에 대해서는 지금의 내가 알 방법이 없다.
그들과 대화를 할 수 있을 수가 없으며,
그들의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이다.
따라서 그들에 대해 평가를 하는 것은 옳지 못하며,
평가는 후손들의 몫이지 나의 몫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이
사회에게 어떤 것을 외치고 있느냐에 대한 것은
고찰해 보며,
사회의 미래를 조금은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역사가 늘 그랬듯이,
패러다임을 깨는 자들은
그들의 의견에 반대론을 펼치는 사람들에게
항상 철퇴를 맞아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툰베리가 가진 생각이
옳고 그름을 다 떠나서,
툰베리가 그런 패러다임을 깨는 자들에
포함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이번 글은 그런 내용에 관한 에세이이다.
・툰베리가 가지고 있는 특성에 대해
서론에서 이야기 했듯이
나는 툰베리와 그의 지지자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며
후에 관심을 가질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별로 관심이 없다.
그렇기에 툰베리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떤 활동을 하고 있으며,
성별을 무엇이고,
어느 국가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궁금하지도 않으며,
그런 류의 이야기를 여기서 할 생각은 없다.
그렇기에 인간 툰베리에 대해
내가 알 필요는 없기에 언급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고찰해보고 싶은 것은
인간 '툰베리'가 아닌 '툰베리를 주목하고 있는 사회'에 대해서 이다.
따라서 나는 툰베리가 가지고 있는 특성에 대해
일단 추출해보려고 한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툰베리를 지지하는 것은
'인간 툰베리' 자체가 아닌 그가 보여주고 있는
어떠한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툰베리'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크게 추출해보면,
'청소년', '환경 운동가', '여성'
크게 세 가지 인것 같다.
물론 여기에 '스웨덴'이라는 국가를 넣을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툰베리가 '스웨덴'에서 태어났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에 들어서 '국가'라는 특성은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힘들다.
따라서 크게 세 가지 특성으로 분류하겠다.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다.
먼저 '환경 운동가'라는 특성은 어떤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나에게는 확 와닿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환경 운동가'라는 것은
과거에도 있어왔고,
지금도 스스로 '환경 운동가'라고
외치는 사람들은 많기 때문이다.
그런 '환경 운동가'들은 이 세상에 충분히 있는데,
굳이 툰베리를 지지할 이유는 없다.
그렇기에 '환경 운동가'라는 특성은
별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힘들 것이다.
그 다음으로 그의 성별인
'여성'에 대해서는 어떤가?
현재 '페미니즘'이라는 하나의 이념은
미국 사회에서 하나의 큰 파도로서 작용하고 있다.
사회가 발달하면서
그리고 정확히는 기술이 발전하고,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더 이상 여성이 가정에 묶여 있을 필요가 없게 되자
우리는 과거 '여성'의 역할에 대해 의문점을 가지게 되었고,
더 나아가 과거 '남성'의 역할에 대해 의문점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 영향으로 '페미니즘'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한국의 경우는 '미투'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이런 '페미니즘'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올라탔다.
물론 지금 주목 받고 있는 '페미니즘'은 매우 급진적이며,
'옛것에 새로운 것을 얹는다'라는 의미의
'진보'와는 매우 거리가 멀다.
왜냐하면,
이런 급진적인 페미니즘에서 말하는 것은
'남성'과 '여성'을 완전히 분리시켜,
과거 관습에서 나타나는 문화를 기반으로
'남성'의 단점을 부각시킴과 동시에
'여성'의 장점을 부각시켜
그들의 논리를 옹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과거에 관습에서 나타난
'여성'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만,
과거에 관습에서 나타난
'남성'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들이 말한대로
남성과 여성의 평등을 원했다면,
그리고 '진보'하기를 원했다면,
과거 '여성'의 관습과
과거 '남성' 의 관습을 해체한 후
내부에서 충분히 논의 한후에
그들의 이상을 세상에 알려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으며,
힘을 얻었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그들은 오직
과거 '여성'의 관습만을 해체한 후
논의하고,
그들의 이상을 세상에 발표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써먹을 수 있는
사상가들의 이론을 부분적으로 가져와
그들의 논리를 옹호하기 위해 사용했다.
우리의 사회를 두 개로 분류하자면
'남성'과 '여성'으로 분류 할 수 있는데,
가능한 다수의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보단
'여성'만의 관심을 얻고, '여성'만의 힘을 택했다.
또한 아이러니 한 것은
이런 '남성'과 '여성'에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런 급진적인 페미니즘을 옹호하고 지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굉장히 흥미롭다.
어쨋든 나는 지금의 '페미니즘'에 대해
좋지 않은 시각으로 보고 있긴 하다.
하지만, 이에 대한 '페미니즘'이
나의 예상과 다르게 정당한 것이 였고,
부정적인 영향보다 긍정적인 영향이 더욱 크다면
그들의 논리가 정당하다고 후손들에 의해 평가 받아질 것이다.
하지만, 이번 글은 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니
넘어가기로 하고,
재미있어보이는 주제이기도 하니
기회가 있다면 그때 자세히 고찰해보기로 하자.
어쨋든 그의 '여성'이라는 특성이
사람들이 주목하는 근거에
큰 영향력을 끼쳤으리라 나는 생각하고 있다.
만약 툰베리가 '남성'이였다면
노벨 평화상에 언급될 정도로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
나는 그에 근접할 수 있을지 언정
그런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현실에서 '여성'이 부각되고,
그들이 긍정적으로 재평가 받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남성'은 부정적으로 재평가 받았고
'남성'이 가지고 있던 민낯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이 남자들의 정치에서의 영향력을 약화시켰다.
그걸 증명하듯이
정치권에서 '여성'은
'정치'라는 모닥불에 '여성'이라는 장작을
넣은것 처럼 활활 타올랐다.
정치인들에게 이런 '여성'이라는 장작은
필히 중요한 장작임에는 틀림없다.
마지막으로 '청소년'이라는 특성은 어떤가?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꽤나 흥미롭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매우 흥미롭다.
왜냐하면,
'어른'들은 '청소년'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내가 경험한 나라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개 비슷하다.
나는 툰베리가 가진 특성 중
'청소년'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사실 이번 글에서 내가 이야기하고 싶었던것이
바로 '청소년'에 대한 것이다.
・'청소년'이라는 특성에 대해
그렇다면 '청소년'은 무엇일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라마다 약간씩 다르긴하지만,
결론적으로보면
만 19세가 된다면,
사회는 '청소년'에게 제약을 가했던 것들을 개방해주어
허용해준다.
술, 담배, 노동, 부모로 부터의 제약 등등
꽤 많은 부분들이 허용된다.
물론 동양 국가의 경우에는
섹스가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동양 국가에서는 아직까지는
청소년의 섹스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
동양 국가 중 하나의 나라에서 태어났고, 생활해왔지만
나는 그 이유를 정확히 설명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내가 이야기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런 인식이 매우 강하다는 것 뿐이다.
어쨋든,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을 바라보는 인식은
부정적인 것들이 대부분이다.
'불안정', '불규칙' 등의 부정적인 시각이 강하다.
'어른'은 안정적이고,
'청소년'은 불안정적이다.
「따라서 '청소년'에게 몇 가지 행동의 제약을 가하고
그것을 안정적인 '어른'이 지켜보며,
그들이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은 '어른'들의 할 일이다. 」
라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마치 '진리'와 같이 다가오고 있는 관습이다.
하지만,
이런 '청소년' 과정을 거치고,
그런 관습 아래
'어른'이 되는 과정을 거친 나는
그런 '진리'에 대해 의문점을 가지고 있다.
('진리'라고 말하기 부끄럽지만, 일단 그렇다고 하자)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의 사회에서
어른은 안정적이고,
청소년은 불안정적이다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지만,
내가 느꼈던 사회의 '어른'도
'청소년'과 같이 불안정적이였기 때문이다.
가장 웃긴것은
'어른'들은 '청소년'들에게
도둑질을 하지마라,
사람을 속이지 말라 등과 같은
도덕적 관습을 배우기를 요구하고,
'청소년'들이 이에 따르기를 원한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사회의 '어른'들은
그들이 불안정하다고 생각하는 '청소년'들과 똑같이
도둑질을 하며,
사람을 속이고,
심지어 사람을 죽이지만
이런 인식에 대해 뭔가 잘못되었다는 점에 대해,
따라서
우리는 이런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언급하지도 않으며, 관심도 없는 듯 하다.
심지어 이런 논의 조차 조심스러워 해야 한다.
'청소년 툰베리'가 노벨 평화상의 후보로 언급될 정도로
영향력이 있고,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청소년 툰베리'가 어떠한 직감을 가지고 있음에는
틀림 없을 것이다.
물론 '청소년 툰베리'가 '어른'들의 꼭두각시 였다면
이야기가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하더라도
꼭두각시 역을 굳이 '청소년'에게 맡겼다는 것은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며, 고찰해볼만 한 주제이다.
따라서 나의 논지를 좀 더 강화하기 위해
'툰베리'가 꼭두각시 역할이 아니였다고 가정하에
출발하는게 옳다고 생각한다.
또한 '청소년 툰베리'뿐만 아니라
다른 '청소년'들이
'어른'들과 비슷한 혹은 유사한 직감을 지닐 수 있고
훌륭한 직감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우리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들이 가지고 있는 그런 직감에 대해 들어보고,
논의해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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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30 초안 작성 및 개행 완료
2020.04.03 내용 분류 완료(1과2로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