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chitecture, Technology ,Web ] SSO(Single Sign On) 그리고 SAML에 대해

이미지
이번 프로젝트 내부에서 어쩌다보니  유저 인증 관련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고, 해야하는 업무는 내부에 사용했던 적이 없던  새로운 개발 플랫폼에서  SSO의 프로토콜 중  SAML을 이용해 앱의 인증을 구현해야만 했다. SSO를 생각해본적 조차 없는 상황에 이를 새로운 개발 플랫폼에 도입해야 했기 때문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으나 구현에 성공하였으며 덕분에 SSO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그러한 과정에서 나온 지식들과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SSO에 대한 정의 먼저 사전적 정의 부터 살펴보자. 다만, 기술적인 용어다보니 자주 사용하는 옥스포드 사전에 정의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검색으로 찾을 수 있는 정의를 몇 가지 살펴보고 교차 검증을 해보자. 첫 번째 정의를 살펴보자. Single sign-on (SSO) is an identification method that enables users to log in to multiple applications and websites with one set of credentials.  SSO는 웹사이트에서 한 번의 인증(one set of credentials)으로 복수의 어플리케이션에 로그인 할 수 있는 인증(identification) 방법(method) 이다. 두 번째는 위키피디아의 정의이다. Single sign-on (SSO) is an authentication scheme that allows a user to log in with a single ID to any of several related, yet independent, software systems. SSO는 독립적이지만 연관되어있는 몇몇 소프트웨어에 대해 하나의 ID로 로그인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인증 구조(scheme) 세부 설명에 조금 차이가 있어 보이지만 전체적인 틀은 매우 비슷해 보인다.  몇 가지 포인트가 되는 단어를 추출해 이를 연결해보자면 아래와 같은 의미를 산출 할 수 있다. 독립적이지만 연관되어 있

[ 생각 ] 개인의 철학책과 현대 자본주의 공동체



오늘은 조금 철학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철학은 학문으로서 어떤 사상을 연구하는
그런 철학이 아니라, 그것을 포함한 어떤 물체, 사실 등을 '왜?'라는
질문을 통해 꼬리의 꼬리를 물며, 해답을 찾아내는 것을 말한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은 왜 태어났는가', '사후세계란 존재하는가'등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철학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내 스스로 이런 것들을 정리한 나만의 '철학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한 '철학책'은 다른 철학자들의 사상을 넣어놓은 것이 아니다.

물론 그것들에 영향을 받을 수 는 있지만,
그것과 동일하지는 않다.

이런 '철학책'은 나의 이상을 현실에 대입해 볼때에서 나온
나의 간접적,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얻은 것들이며,
나의 사상, 나의 원칙, 나의 신념, 나의 꿈 등의 요소들을 담은 것들이다.

이 요소들은 나에게 있어서는
밀이 말한 '부분적 진리'에 가까운 것들이다.

나는 나의 '철학책'들의 요소를 결코 '진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의 이상을 실험할 때,
경험을 통한 고찰과 성찰을 통해 나온것들이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인간인 이상 나는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내가 '부분적 진리'에는 근접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 혼자서는 '진리'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나의 경험에서 나온 것들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맞으리라 보장도 없다.

따라서 나의 '철학책'은 '부분적 진리'일지도,
아닐지도 모르며 '진리'는 아니다.

그리고 나의 '철학책'은 끊임 없이 개선된다.

동양에서는 이런 자신만의 '철학책'이라는 개념이 없다.

왜냐하면, 동양에서는 아직도 개인보다 공동체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공동체 사회에서는 어떤 특이한 사람이 보이면 철저히 배제된다.

농업 공동체에서는 그 특이함이 좋은 것이건,
나쁜것 이건 배제되었다.

하지만 자본주의 공동체에서는 '사회적 지위(흔히 돈을 많이 받는 직업)'이
가지고 있는 신념을 포함한,
위에서 말한 '철학책'의 요소들은 그것이 정말 좋은것이건, 나쁜것이건 간에
좋은 특이함으로서 자본주의 공동체에서 받아들여지며,
이는 그 특이함에서 나오는 것을 '개성'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자본주의 공동체에서 믿고 있는 '신념'
('옳은 신념'이든 '텅빈 신념','거짓된 신념' 포함)의 요소와
'사회적 지위'가 높은 개인의 '철학책'의 요소와 상반되어 부딪치더라도

그는 공동체안에서 '예외'로서 인정 받고 환영받을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예외'로서 인정 받은 것 뿐이지,
그가 그 공동체를 훼손하게 된다면
그는 그 공동체의 철퇴를 맞을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그 자본주의 공동체안에서
이런 '사회적 지위'가 높지 않은 사람들이 
이런 '철학책'을 가지고 있고,
'개성'으로서 이해받으려 한다고 하면
먼저 의심을 받고 
그래도 이해받으려 한다면 부정 당하며 
마지막에는 배제된다.

따라서 '동양의 자본주의 공동체'안에서는
사회적 지위가 높지 않은 개인들의 '철학책'은
흔히 말하는 '개똥철학'으로 탈바꿈되어 가치가 훼손된다.

그리고 그런 특이함에서 나오는,
그런 '철학책'에서 나오는 것들은 
'개성'으로서 용납되지 않으며,

공동체는 
개인에게 그런 특이함을 버리라며 
압박하고, 탄압하여, 배제한다.

여기서 그 특이함이 
사회에 중요한 가치를 지니건, 지니지 않건

즉, 옳건, 그르건 중요하지 않다.

공동체의 '신념'에 반하거나 그의 준하기 때문에

즉, 공동체를 훼손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을 억압하고 탄압하여,
공동체의 '신념'을 지키기위해 개인을 배제한다.

결국 여기서 개인이 할 수 있는 행동은 세 가지 뿐이다.

자신만의 '철학책'을 버리고, '개성'을 버리고
공동체에 흡수되던가

자신만의 '철학책'을 버리지 않고,
공동체에게 억압받고 탄압받으며 살던가

아니면 공동체를 떠나는 방법 뿐이다.

공동체에 순응한다면,
'개성'은 사라지고 공동체는 활력을 잃는다.

공동체에 순응하지 않더라도,
'개성'을 가진 개인은 공동체와 멀어지게 되어
활력을 잃는다.

결국 공동체로서 '신념'은 그것이 옳바르건, 올바르지 않건
지켜지며,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고인물 마냥 썩기 시작할 것이다.

내가 가본 동양의 세 마리 용(중국,한국,일본)은
모두 이런 '자본주의 공동체'에 속했다.

이런 동양의 '자본주의 공동체'는 발전 단계에서는
서양의 '자본주의 공동체'의 에너지 보다 높아
비교적 빠른 발전을 이룰 수 있었지만

이런 에너지는
내적으로, 그리고 외적으로 서서히 소모되어
0에 가까워지면 사회의 활력을 잃는다.

왜냐하면,
개인들이 '철학책'을 가자지 못하고, 배제된
사회는 유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의 사고의 틀을 깨야 할때,
그런 유연하지 못한 것이 사회를 성장을 방해한다.

먼저 일본이 개방을 통해 엄청난 발전을 맛보았으나 한계가 보였다.
그 후에 한국이 개방을 통해 엄청난 발전을 맛보았으나 한계가 보인다.
다음으로 중국이 개방을 통해 엄청난 발전을 맛보았으나 한계를 느끼고 있다.

그렇다고 서양의 '자본주의 공동체'는 성장하고 있는가?

꼭 그렇지는 않다.

특히 유럽은 일부 나라만을 제외하면,
경제에 문제가 있음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이는 성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에 가입해있는 국부가 많거나, 성장을 하고 있는 나라들이
유럽연합이라는 이름 하에 그들을 지켜주고 있지만,

영국의 브렉시트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유럽 연합의 유대관계도 약화되고 있음을 예견하고 있다.

이런 '자유'를 주장한 밀은 영국에서 태어났고,
그의 '자유론'도 영국에서 처음 세상에 나타났지만

결국 그의 '자유'라는
이념의 가치를 정확히 평가한 나라는 '미국'뿐인 듯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의 각 개인들이 '철학책'을 모두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미국의 '자본주의 공동체'에서 받아들여진 밀의 자유에 의해
이런 '철학책'을 가진 개인들이 탄압받고 억압받을지는 모르겠지만,
배제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이런 것이 미국이라는 나라에 유연성을 주었으며,
그 만큼 나라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었다.

나는 세계 모든 개인들이 '철학책'을
가져야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철학책'을 가지지 못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철학책'을 받아들여도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이런 '철학책'을 무시하고, '개성'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는 더 이상 발전하기는 힘들 것이다.

물론 그런 사회에서 더 이상 발전을 원하지 않는다면
나는 할말이 없다.

하지만 사회가,
사회 구성원들이 더 이상 발전을 원하는데에도 불구하고,
개인들의 '개성'을 무시하고 탄압하고 배제한다면
그들이 원하는 사회는 원하는 발전은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세계는 계속 변하고,
그에따라 흐름이라는 큰 파도가 오며
사회는 그 큰 파도에 타기 위해
무엇보다 유연함이 필요한데

그런 사회는 그런 파도에 타려해도 유연하지 못해
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파도에 올라타지 않으면서,
사회에 성장을 바라는 것은
무언가 잘못되도 단단히 잘못된 것이다.

                                   2020.03.10
                             역근처 스타벅스에서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 Web ] 웹 애플리케이션 아키텍처 (Web Application Architecture)

[ Web ] 서버 사이드(Sever Side) ? 클라이언트 사이드(Client Side)? 1 [서론, 클라이언트 사이드(Client Side)]

[ Web ] 웹 애플리케이션? 웹 사이트?(Web Application? Web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