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chitecture, Technology ,Web ] SSO(Single Sign On) 그리고 SAML에 대해

이미지
이번 프로젝트 내부에서 어쩌다보니  유저 인증 관련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고, 해야하는 업무는 내부에 사용했던 적이 없던  새로운 개발 플랫폼에서  SSO의 프로토콜 중  SAML을 이용해 앱의 인증을 구현해야만 했다. SSO를 생각해본적 조차 없는 상황에 이를 새로운 개발 플랫폼에 도입해야 했기 때문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으나 구현에 성공하였으며 덕분에 SSO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그러한 과정에서 나온 지식들과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SSO에 대한 정의 먼저 사전적 정의 부터 살펴보자. 다만, 기술적인 용어다보니 자주 사용하는 옥스포드 사전에 정의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검색으로 찾을 수 있는 정의를 몇 가지 살펴보고 교차 검증을 해보자. 첫 번째 정의를 살펴보자. Single sign-on (SSO) is an identification method that enables users to log in to multiple applications and websites with one set of credentials.  SSO는 웹사이트에서 한 번의 인증(one set of credentials)으로 복수의 어플리케이션에 로그인 할 수 있는 인증(identification) 방법(method) 이다. 두 번째는 위키피디아의 정의이다. Single sign-on (SSO) is an authentication scheme that allows a user to log in with a single ID to any of several related, yet independent, software systems. SSO는 독립적이지만 연관되어있는 몇몇 소프트웨어에 대해 하나의 ID로 로그인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인증 구조(scheme) 세부 설명에 조금 차이가 있어 보이지만 전체적인 틀은 매우 비슷해 보인다.  몇 가지 포인트가 되는 단어를 추출해 이를 연결해보자면 아래와 같은 의미를 산출 할 수 있다. 독립적이지만 연관되어 있

[ Essay - Entropy ] 엔트로피에 대해



유년기때 읽은 해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와
청년기에 읽은 해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그리고 중년기에 읽은 
해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다르다고 했던가.

최근에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를 다시 한번 읽었다.

이유는 과거에 제대로 읽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이 된다면 최우선으로 
다시 읽자라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물론 유년기와 청년기 사이의 시간만큼은
아니지만 말이다.

어쨋든
다시 읽으면서
나는 엔트로피와 현재에 대한 
에세이를 쓰고 싶은 욕구가 쓰나미가 밀려오듯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래서 다른것을 우선 제쳐두고 이것부터 
내가 만족할때 까지 쓰려고 한다.

BEP 프로젝트를 우선 해야할까 싶기는 하지만
에자일 부분에서 잘 나아가지 않는 바람에
작성이 밀리고 있다.

어쨋든 쓸때없는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이런 엔트로피 세계관에 기반해
사회 여러 문제들을 생각해보면 
조금은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다시 말해서
리프킨의 주장에 설득당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설득당해버린 김에
여기에 올라타서 현실 세계를 
조금 들여다보기로 하기로 했다.

이번 에세이는 다른 글들과 다르게 
꽤나 긴 글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엔트로피 세계관을 대입해 
사회 문제에 대해 이해하려는 시도를 
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먼저 엔트로피가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엔트로피란 무엇인가


엔트로피 법칙에 대해서는 
단순한 지식 쑤셔넣기에 익숙한 현대인이라면 

열역학의 제 1법칙과 제 2법칙에 대해 
한번 쯤은 들어본적이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정의는 아래와 같다.

"우주에 있는 모든 에너지의 총화는 일정하고(제1법칙)
모든 엔트로피는 끊임없이 증대된다(제2법칙)"

제 1법칙은 흔히 알고 있는 에너지 보존 법칙

예를 들어 자동차가 
가솔린에서 에너지를 얻는 방법으로 설명하자면

가솔린에서 얻을 수 있는 총 에너지는
엔진을 움직이는 에너지와
배기 가스 속의 에너지의 합과 같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제 2법칙은
이런 과정에서 사용 불가능한 에너지인 
엔트로피가 끊임없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패트병과 나무젓가락과 같은 것을 
재활용한다고 해도 100%를 재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패트병 2개를 재활용할때 
패트병 1개로 재활용할 수 있다면

재활용 불가능한 패트병 1개가 바로 
사용할 수 없는 엔트로피다. 

리프킨의 엔트로피에서는 
콜라나 사이다 같은 깡통의 경우 
평균적인 재사용률은 30%정도라고 한다.

즉,
빈 깡통 3개를 재활용한다면 
빈 깡통 1개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빈 깡통 2개분이 바로 
재사용할 수 없는 에너지인 엔트로피의 양이 된다.

또한 이 뿐만아니라 실제 
빈 깡통을 수집, 운반, 처리 할때 
사용되는 에너지를 생각해본다면

실제 에너지는 이보다 클 것이고
자연히 그 만큼의 엔트로피도 증가하게 될 것이라고
리프킨은 설명한다.

그렇다는 것은 자원은 한정적이고
쓰면 쓸수록 엔트로피가 쌓인다면

결국에 엔트로피가 최대로 증대 된다면
자랑스러운 현대인이 사용하고 있는 
캔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될것이며,

빈 깡통은 역사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이쯤되면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인듯이 보일 것이다.

기분탓이 아니다.

왜 일회용 용품에 대해 
가급적 쓰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각 나라들의 정부가 지속적으로 이야기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엔트로피의 증가를 
최대한 막기 위해서이다.

리프킨이 말하는 엔트로피 세계관


리프킨은 이런 엔트로피 법칙이 
현실 자체의 본질이기 때문에

이성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감각적으로 파악해,
일종의 직관력이 필요하다고 이야기 한다.

내가 다른 에세이에서 
비슷한 이야기한 바와 비슷하다.

나는 다른 에세이에서 
현대 교육에서 강제적으로 
쑤셔넣은 단순한 지식 보다

깨달음이나 직관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 한 바가 있다.

리프킨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니
마치 든든한 친구를 얻은듯한 기분이다.

그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쨋든 그는 엔트로피 법칙이 
현실 자체의 본질이기 때문에 
그리고 이것이 '진리'라고 불리우는 것들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이것에 입각해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는 것이 유익할 것이라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는 책에서 
인간의 에너지에 관한 역사, 
인간의 기술, 인간의 경제학을 이야기하면서 
이런 것들 또한 엔트로피 법칙에 
지배당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자세한 이야기는 
그의 책을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리프킨은 이런 엔트로피 세계관에 의해 
삶이 그리고 지구가 더 나아가 우주가
지배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베이컨, 데카르트, 뉴턴 
그리고 그들의 영향을 받은 
존 로크와 애덤 스미스의 
영향력이 아직 까지도 너무 강력하기 때문에

현대인들이 기계적 세계관에 
물들어 있다고 이야기 한다.

하기야,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The people들이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시점에서도
얼마나 경제에 집착하고 있는지에 생각해보면
이런 기계적 세계관에 물들여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어쨋든 리프킨은
기계적 세계관을 버리고
엔트로피 세계관에 입각해 세계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해야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현재 가장 큰 문제인 
에너지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다.

물론 그의 예측 중 
석유에 관련된 예측은 멋지게 빗나갔다.

석유 채굴 기술의 발달로
셰일 가스를 가성비 있게 뽑아낼 수 있게 되면서 
석유에 에너지의 수명 연장이 이루어졌다. 

놀랍게도 미국 전역에서 
셰일 가스의 발견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으니
현대인에게 있어서는 희망찬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리프킨이 제시한 해결책


매우 안타깝게도 
인류 뿐만 아니라 지구의 온 생명체가 
이러한 엔트로피의 저주를 받고 있는 이상

엔트로피의 저주를 근본적으로 
해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생명체는 에너지를 
얻어야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엔트로피는 증대할 수 밖에 없으며 

빅뱅 이론에서도 설명하듯이
우주가 계속해서 팽창하다가 
최대치에 이를 때 빅뱅이 일어나겠지만

팽창 속도
즉, 엔트로피의 증대를 늦츨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떤 극단주의 사람들이 말하듯이 
모든 사람이 원시 시대로 회귀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현대인들 중에 한명인 나는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현재 누리고 있는 문명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리프킨은 이에 대해
저 엔트로피 사회를 구축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주장과 동시에 
공자, 노자, 석가모니 등과 같은 성인들이 제시한
동양 철학을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동양 철학에서의 절제 
그러니깐 에너지의 흐름을 적게 하는 것이 
좋다는 가르침이 있기 때문에

뉴턴적 세계관
즉, 기계적 세계관에 벗어나
이러한 가르침에 
현대인이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맞는말이다.
이런 엔트로피에 해당하는 것들이 동양에서 부르는
업, 카르마와 같은 것들이다.

동양의 세계관에서는 
죄, 업, 카르마와 같이 엔트로피를 쌓게 된다면
결국에 파멸에 길에 도달한다는 사고관이 확실히 존재한다.

그리고 죄, 업, 카르마를 권선징악과 아주 잘 묶는다.

반대로 덕을 쌓으면 
이러한 것들이 상쇄될 수 있으며
많은 덕을 쌓게되면 성인의 경지에 오른다는 그러한 세계관과

엔트로피 세계관을 비교해 본다면
비슷한 부분이 직감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업과 카르마를 비롯한 것이 바로 엔트로피이다.

업과 카르마라는 개념은 본질적으로 해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단지 덕을 쌓아서 업과 카르마를 상쇄시키는 방법 밖에 없다.

결국 엔트로피 세계관에서
엔트로피가 계속해서 쌓여가여 팽창하여 
최대치에 도달했을 때 무질서의 상태로 돌아가듯이

동양의 세계관에서
업이나 카르마가 계속해서 쌓여가여 
최대치에 도달했을 때 결국 파멸의 길(무질서)로 
들어간다는 점에서 매우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어쨋든 리프킨은 
또한 육체적・정신적 능력이라는 점에서 
인간이 200만 년 동안 
별로 변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의식이 서서히 발전하면 
먼 장래에 언젠가는 
완전한 경지에 도달할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되었으며

우리의 잘못과 태만을 
완전으로 향하는 하나의 과정에서 범한 실수라고 
언제나 변명해 왔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이러한 리프킨의 말에 설득당해버렸다.

그렇다면 
현재 다양한 문제점에 대해 
이런 엔트로피 세계관의 시점에서 바라보고 
이를 논해본다면 조금은 다른 해결책이 보이지 않을까?

해결책이 보이지 않더라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이전 보다는 조금은 '진리'에 가까워질지도 모른다.

엔트로피를 쌓는 것은 단순히 나쁜것인가


나는 위에서 리프킨의 이야기를 이야기하면서
캔을 예로 빈 캔을 3개를 재활용 하면 
그 중 한 개가 재활용 된다고 말이다.

단순히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확실히 캔을 사용함으로써 나타는 엔트로피 좋지 않아 보인다.

캔이라는 유용하고 효율성 있는 오브젝트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히 인류에 있어서 재앙과 같다.

캔을 사용함으로써 엔트로피가 최대치에 도달 했을 때,
인류는 더 이상 여름철에 자판기에서 뽑을 수 있는 캔 콜라를 마실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면에서 이를 보면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 지도 모른다.

단순히 우주의 빅뱅만 보더라도
빅뱅이 있었기에 수 많은 오브젝트들이 흩어지면서
지구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겠는가?

같은 의미로 캔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또 다른 기회를 충분히 창출 할 수 있다는 것 이다.

이런 의미에서 엔트로피를 쌓으면 쌓을 수록
수동적인 진보 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결국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모든 질서(왕정,법, 도덕을 비롯한 모든 것)라는 것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질서에 엔트로피가 쌓여서 터짐으로써
인류가 원치 않아도 대안을 찾아야 할 상황이 오기 때문이다.

왕정이라는 과거의 질서의 단점이 부각되면서
공화정이 등장했고 공화정의 단점이 부각되면서
현대의 민주주의라는 패러다임이 등장한 것이 아니겠는가?

뿐만아니라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강력한 양적 완화 정책으로 엔트로피를 쌓은 결과
빠른 인플레이션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인류의 역사가 그래왔듯이
소극적인 진보를 이룰 수 있음에 의심치 않는다.

결국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억지로 빠르게 쌓을 필요는 없지만,
엔트로피를 쌓는다는 것 자체 그렇게 나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질서에서 무질서로 돌아간다는 것은
새로운 질서로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이고 
그것이 적극적이건 소극적이건 간에 인간을 진보하는 것임에는 틀림 없기 때문이다.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 Web ] 웹 애플리케이션 아키텍처 (Web Application Architecture)

[ Web ] 서버 사이드(Sever Side) ? 클라이언트 사이드(Client Side)? 1 [서론, 클라이언트 사이드(Client Side)]

[ Web ] 웹 애플리케이션? 웹 사이트?(Web Application? Web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