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로 양적 완화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했다면,
(그러길 바라고 있다.)
드디어 다음 이야기로 넘어 갈 수 있다.
바로 엔트로피 세계관에서 양적 완화가
어떤 엔트로피를 쌓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기서 고려해봐야할 점은 일반적인 엔트로피 뿐만아니라
플러스 엔트로피의 요소가 존재해
플러스 엔트로피가 쌓이는 것도 고려해봐야할 것 이다.
양적 완화와 플러스 엔트로피
양적 완화로 얻고자 했던 것은
외부 요인을 배제하고 자국의 경제 활성화를 얻고자 했을 것이다.
조금 어렵게 말하자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해
자국의 경제를 활성화시키려는 목적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시장에 '유동성 공급'은 성공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플러스 엔트로피로 볼 수 있을 것 이다.
하지만, 이로서 얻을 수 있는 엔트로피는 더욱 증가하게 되었다.
가장 대두되는 엔트로피는 '부의 양극화'이다.
양적 완화는 기본적으로 자국의 화폐를 찍어내서
국채나 사채를 사들임으로써 시장에 '유동성'을 넣어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직접 사람들에게 화폐를 뿌리는 것이 아닌
중앙 은행이 돈을 찍어내고,
이 찍어낸 돈으로 국채나 자국 회사채를 사서
국채의 경우는 폐기시키고
중앙 은행은 이 돈을 은행 준비금으로 보유 한다.
따라서 이론상으로는 실물 경제에 큰 영향이 없을 것이다.
중앙 은행과 정부가 손을 잡고,
정당한 방법으로 '사기'를 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사람은 그렇게 복잡하게 돌려서 하지 말고
직접 모든 사람들에게 돈을 뿌리면 좋은거 아닌가?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럴 경우 나타날 수 있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독일이
전쟁배상금으로 화폐를 마구 찍어내면서 나타난 현상을 보면
화폐 자체를 뿌리는 것은 리스크가 너무나도 크다.
나라 경제 자체가 붕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돌고 돌아서 시장에만 유동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양적 완화로서 기대되는
플러스 엔트로피스는 이전 장에서 이야기 했던
케인즈 경제학(거시 경제학의 총수요)의 요소들인
투자(I)와 가계 소비(C) 촉진,
순 수출(NX) 촉진,
정부의 재정 안정화가 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 중에서 몇 가지 것들은
실제 효과를 본것 같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코로나가 사라지고 난 후에 이야기 해야겠지만 말이다.
이것들은 분명한 플러스 엔트로피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측하기 힘들었던 코로나가 전 세계적으로 퍼지면서
양적 완화를 시행함으로써 나타나는 엔트로피가 얼굴을 내밀면서,
세계의 골칫거리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양적 완화와 엔트로피
양적 완화로 나타날 수 있는 엔트로피에 대해
여러가지에 대해 언급할 수는 있겠으나
나는 '가속되는 양극화' 현상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다.
분명 이런 현상에 대해서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는
언급되었으리라 생각 된다.
양적 완화를 시행하면서
자국 시장에서의 '유동성'이 증가하고,
지표로 나타나는 시장은 성장한 것 처럼 보인다.
(정말로 성장했는지에 대해서는 넘어가도록 하자.)
그리고 주가는 엄청난 상승을 이루었다.
여기서 나타나는 '양극화'는
대개 자본을 소유한 사람과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간의 간격을 말한다.
물론 많은 자본을 소유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간격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문제는 대개 자본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부자'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회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일을 하고 급여를 받는'
일반적인 '사회인'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이들을 통틀어 '사회인'으로 칭하겠다.
따라서 이들 중 자본(아주 조금이라도)을 소유하고 있는
소수의 '사회인'들에게는 이런 양극화 현상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다.
그들의 자본도 적건, 많건 상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자본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사회인'들은 과거보다 더욱더 가속화되는 양극화를 맛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양적 완화로 인해 자본을 소유한 사람과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간의 격차가 더더욱 가속화되는 것 이다.
쉽게 말해서 자본을 소유하지 않은 대부분의 '사회인'들은
자본을 소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주가 상승분 만큼의 소득을 얻을 수 없지만,
자본을 소유하고 있는 소수의 '사회인'들과 자본가들은
자본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주가 상승분 만큼의 소득을 얻을 수 있었다.
즉, 자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자본은
계속해서 성장하지만,
자본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성장에 쫓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격차는 더욱더 벌어진다는 것 이다.
가속화 되는 양극화로 나타나는 현상
현대인들은 '인터넷의 시대'에 살고 있다.
조그만한 기계를 들고 다니면서 모든 것을 하고 다니기 때문이다.
이제는 정말로 모든 것을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 금융, 비지니스, 쇼핑을 포함해
심지어 현대인들의 일 조차 코로나의 영향으로
비대면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이것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느끼자 코로나가 끝나고도
이런 방식을 유지하는 것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회사들의 소식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앞으로 이런 원격으로 일하는 방식이
어쩌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현대인들에게 다가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쨋든 우리는 이제 조그만한 디바이스를 가지고
사실상 모든 것을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보 교환이 활발해지기 시작하고,
단순한 텍스트에서 영상으로 패러다임이 변화하면서
과거에 비해 보다 빠르게 정보를 습득할 수 있었다.
이에 가장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구글의 '유튜브'이다.
지금의 현대인들(2020년 기준)은
생활의 전반을 유튜브와 함께 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튜브 시장이 확대되면서,
덩달아 유튜브 내부의 광고 시장도 확대되고
결정적으로 유튜브가 유튜브 채널 관리자(최근에는 크리에이터라고 부르는)와
이런 광고 수익을 공유하면서 많은 돈을 벌어들이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유니크함을 무기로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엔터테이먼트 뿐만아니라
지식, 교육 등의 교환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런 양적 완화의 혜택을 톡톡히 본
자본을 소유하고 있던 소수의 '사회인'들이 정보를 공유하면서
너도나도 자본을 소유하려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런 현상으로 인해 과거에 유래 없었던
'유동성 폭탄'이 시장에 들어오면서 시장이 날뛰기 시작했다.
시장이 날뛴다는 것은
새로운 투자가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고
기업 입장에서는 굉장한 희소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양적 완화를 시행한 정부 입장에서는
(물론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꽤나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시장에는 시장 참여자들의 기대감이 들어가기 때문에
해당 자본이 과평가 되어있는지
올바르게 평가되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때가 되고 나서야 올바른 평가를 하였는지
과평가를 하였는지를 깨달을 수 있다.
올바르게 평가되었다면, 자본이 상승하겠지만
과평가 되었다면, 자본이 하락하는 현상이 발생 한다.
이것이 바로 자본을 소유함으로써 생기는 '리스크'이다.
쉽게 말하면 자본을 소유한다는 것은
결국 누군가는 이득을 보지만,
누군가는 손해를 본다는 이야기이다.
모두가 자본을 소유하려 함으로써 나타나는 현상
자본주의 시대에 사는 사람이라면,
자본을 소유하는 것이 당연하고 소유해야만 한다.
하지만, 모두가 자본을 갑자기 소유하려하면
가격도 덩달아 상승하게 되는데,
여기서 이 자본이 미래에
그 만큼의 가치를 한다면 큰 문제는 없지만
실제 미래에 그 만큼의 가치를 하지 못해
하락하게 된다면 문제가 생길 것 이다.
흔히 말하는 '리스크'가 존재 한다.
자본을 소유한다는 것은 이런 '리스크'를 떠 앉고 간다는 말과 동일 하다.
그 리스크 만큼 자본을 소유하는 사람은 이득을 얻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자본을 소유하는 리스크'에
또 '다른 리스크'를 얹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빚을 내면서 까지 자본을 소유하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제 자본을 소유하려는 사람들 대다수가
이런 리스크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가 하면
고개를 갸우뚱 할 수 밖에 없다.
결국 충분한 '리스크'를 인지하지 못하고
자본을 소유하려고 든다면
그의 마지막 길은 결코 좋지 못할 것이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면서 현재 수 많은 자본에는
많은 거품이 낄 것이라는 예상을 해볼 수 있다.
이 거품이 터질 때,
전 사회에는 미국의 모기지 사태로 시작한 '리만 사태'를 잇는
새로운 경제 위기가 다가올 것 이다.
그래서 양적 완화는 실책인가?
그래서 양적 완화는 실책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물론 이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적어도 나는 실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양적 완화는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였다고 생각 한다.
물론 그로 인해 여러가지 엔트로피가 쌓이는 결과를 낳았으나
그래도 어느 정도 경기 활성화에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만히 있는 것 보다는 나은 선택이 였다.
물론 작게, 작게 보자면 양적 완화에 대한 실책에 대해
냉혹한 평가를 내릴 수 밖에 없겠지만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는
이런 양극화를 어떻게 줄일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이며,
내가 굳이 이런 말을 하지 않아도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대두되고 있는 논쟁거리 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학자들 뿐만 아니라 The People들도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실제 사회를 살아가는 것은 The People들이며
칼자루는 자본주의와 강력하게 결합한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The People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결론
이로서 양적 완화는 현재로서는
'부의 양극화'를 가속화 시켰다는 것,
그리고 이런 현상이 코로나 까지 겹치면서
다양한 사회에 살고 있는 The People들을
자본을 소유할 수 밖에 없게 끔 유도하게 만들었다.
사실상 양적 완화를 시행함으로써
또 다른 엔트로피를 쌓게 결과를 낳은 셈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는 양적 완화가 실책이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리스크는 분명 있었고, 실제 엔트로피를 쌓는 결과를 낳았지만
몇 가지 문제는 해결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The People들에게
자본을 소유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톡톡히 보여주기 까지 했다.
물론 이렇게 됨으로써
새로운 엔트로피가 사회에 쌓였고
앞으로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는 아직 모른다는
사실에는 부정할 수 없지만,
조금이라도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이 되었다고는 할 수 있을 것이기에
우리 사회는 조금 '진보'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이 다음이다.
우선 코로나를 극복해야하는 과제가 남아 있으며,
코로나를 극복한다고 하더라도 양적 완화를 함으로써 나타나는
플러스 엔트로피와 엔트로피들이
사회 전반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할 것 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인류는 앞으로 진보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