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혼란만 남길 뿐이다.
The People들이다.
지금의 The People들은 반쪽 짜리다.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진리'가 있을리가 없다.
어딘가 나사가 빠진 이야기는 매우 신뢰성이 떨어진다.
정부의 정책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정책은 정책이 아닌 '도박'일 뿐이다.
도박이 실패할 경우 그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정부'가 지어야만 한다.
뭔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
일상 생활이나 즐기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퇴보하게 될 것이다.
사실 책임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The People들은 '진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가의 '진보'는 없다.
인류의 '진보' 또한 없다.
우리는 어떠한 만족감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얻을 수 있다면 단순한 쾌락 뿐 이다.
우리는 자유 민주주의에 대해 다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당연히 '자유'라는 말은 빼고 이야기 하도록하자.
그것은 절대 자유가 아니다.
자유라는 것은 그렇게 가벼운 단어가 아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정부를 가지고 있고,
교육을 받아온 the people들은
사실 실제 실존하는 존재가 아니다.
분명 그 나라안에 살고 있는
the people들을 각각 분리해보면
각 개인임에는 틀림 없지만,
the people들은
각 개인들이 하나로 뒤엉킨 실존하지 않는 인물이다.
정부는 the people들에 투표에 의해 선출되기 때문에
정부의 구성원들은 the people들의 목소리를
자의던, 타의던 간에 신경써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자기가 정치인으로서 연명할 수 있기 때문이고,
정치인으로서 연명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의 이상을 펼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정치인들을 선출하는 the people들은
실체가 없는 존재다.
따라서 정치인들은
the people들의 목소리인 '여론'에 신경써야만 한다.
the people들의 목소리는 '여론'이라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추축되어지고 있는 것이
'정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여론'이란,
the people들 각각의 의견을 모아,
논의하고, 비판하여
잘 다듬어진 '부분적 진리'가 아닌
대개 충분한 고찰도,
성찰도 없는 의견으로 나타난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이전에 언급했으며,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교육과 그리고 광장이라는 역할을 하는 곳이 없기 때문이며,
근본적인 원인은 '인간'의 한계에 있다고 밝혔다.
이런 이유로 the people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옹호하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다른 사람들로부터 비판 받고, 고찰하고 성찰하여
이전 보다 좀 더 '진리'에 가깝게
다듬는 것이 결여되어 있다고, 이전에 이야기 했다.
이런 나의 논지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하는 나의 이야기가 정당하지 않게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겠지만,
이러한 사실에 불쾌하더라도
어느정도 동의한다고 생각하도록 하겠다.
따라서 이런 능력이 결여됨에 따라
나타나는 문제점은 개인의 인생에 있어서도 있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신경쓰고 있는 the people들의 목소리인
'여론'이 비판 받기는 쉽지 않다는 것에 있다.
'여론'은 사실상 the people들의 목소리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이야기 하는 '어떤 한 의견'인데,
그러한 '여론'으로써 인정받는 의견은
비판에서 자유롭다는 점이다.
여기서 자유롭다는 것은
정말로 자유롭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여론'에 동의하지 않고 반대론을 제시하는
the people들 중의 한 사람인 개인이나
그러한 개인들이 있다고 한들
'유력한 여론'으로써 인정받는 의견들에 동의하는
개인들이 많기 때문에
이런 '유력한 여론'에 동의하지 않는 the people들은
언제나 늘 '인간'이 그래왔듯이
대개 비난 받거나 억압받기 때문이다.
그런 '유력한 여론'에 동의하는 the people들에게 중요한 것은
반대론이 정당하거나, 정당하지 않다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닌
많은 the people들의 의견인
'유력한 여론'을 비판받는 것 자체를
꺼려하며,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며,
그러한 의견을 비판 받는 것은
자신의 의견을 비판 받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의견이
정당하지 않다는 사실이 들키는 것을 허용당해,
자신의 자아가 상처입히는 것이 두려워
반대론을 제시하는 것 조차 허용치 않는다.
이에 따라 '어떤 한 의견' 중
가장 많은 의견으로 보이는 '유력한 여론'보다 비슷하거나
더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의견'이라면
'여론'으로써 인정받지만,
그보다 수가 적어 보이면 하나의
'여론'으로써 인정받지 못하며,
최악의 경우, 유력한 '어떤 한 의견'에 동의하는
the people들로 부터 철퇴를 맞을 수 있다.
나는 위에서 끊임 없이
the people들에 대해 이야기 해왔었다.
내가 계속해서 이야기 한 이유는
바로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이다.
the people들의 목소리 '여론'이 가지고 있는
가장 최악이며, 가장 비열하고, 가장 자유롭지 않으며
정당하지 않은 점은
자신들의 의견이 '진리'임에 틀림 없다는 그러한 인식과
그런 인식에서 나타나는 비판에 대해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는 것과
이러한 불쾌감을 감추지 못해
그런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다른 the people들을
억압하고 탄압하여, 말을 못하게 막는 점
그리고 그 중 가장 이해하기 힘든것은
그런 '여론'에 대해,
그런 의견에 대해,
the people들의 목소리인 '여론'은
실제 존제하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나는 이점에 대해 매우 정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불쾌감을 감추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그러한 행위는 '자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유'란 자신이 하고 싶은 행위를 하되,
남에게 피해를 입히면 안되며,
만약 피해를 입힐 수 밖에 없는 경우
그에 대한 피해를 받을 수 있는 리스크를 알고 있어야 하며,
이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음에 따라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그에 대한 책임감을 지고 있고,
이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
행동하는 것이 '자유'다.
또한 자유 민주주의는
이러한 '자유'라는 이름을 달고 있으며,
이러한 '자유'를 옹호하며,
행동하는 이상
이런 리스크에 대해 결코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the people들만
이런 책임감(리스크)에서 벗어나 있다.
the people들만이 이런 책임감에서 자유로운 것이 정당한가?
국가의 주체이기 때문에?
과거 왕정의 주체였던 왕도
자신이 행한 행위에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 하면
왕권이 약해지기에
이는 자신의 신변에 위협을 받을 수 있기에
현대인들이 죄악시 여기는 왕정들의 최고 권력자인
왕들 또한 자신의 행한 행위에 대해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the people들만이 책임감에 자유로워야 하는 것은
뭔가 나의 이성이 불쾌해 하며, 용납하지 않는듯 하다.
자유로워야 한다면
도대체 왜 the people들만이
책임감에서 자유로워야 한단 말인가?
나는 이에 대해 정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정부의 '유력한 여론'을 찾기 위한 방법
the people들의 목소리 '여론' 중
가장 '유력한 여론'으로 보이는 것이
사회 구성원의 집합체인 the people의 요소인
각 개인들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정부가 the people들의 전부의 생각을 듣고,
이를 통계화하여 여론으로서 활용하기에는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정부는
학자들이 제시한 '통계학'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이런 통계학에서는
표본 크기(사람 수)를 어떻게 결정해야
이런 통계의 신뢰 수준을 맟추기 위해 표본의 크기를 계산하고
표본 크기를 구하기 위한 공식은
통계학자들이 제시한 수학 공식에 의해 결정되어 진다.
그리고 대개 신뢰 수준 95%를 맞추기 위한
최소 표본 크기를 통계의 표본 크기로서 활용하는데,
여기서 신뢰 수준 95%란,
이 통계가 95%의 확률로 믿을만하다고 통계 학자들이 설명하며,
여기에 자신들이 생각한 수학 공식이 있다며
선뜻 제시한다.
나는 통계학자가 아니기에
그들의 수학 공식이 정말로 '진리'인지 아닌지에 대해
논할 수 없지만,
그들이 제시한 것이 정말로 '진리'라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이런 통계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95%를 너무 신뢰한 나머지
자신들의 통계가 5%에 들어갈리 없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대게 통계로서 활용되는 신뢰수준 95%의
표본의 크기는 대략 1000명 단위의 수준으로
10000명을 넘지는 못 한다.
하지만, 5%라는 것은 꽤나 높은 확률이며,
수많은 the people 중에
왜냐하면,
우리에게 어떤 전염병이 치사율이 1%만 되어도
심각한 질병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며,
the people들의 수를 보여주는
그 나라의 the people들의 수는
한국의 경우 5000만명으로
한국의 5000만명의 수는 결코 많은 the people들의 수는 아니다.
그 중 1000명의 수준에 조사에 그친다면,
과연 그것이 정말로 '유력한 여론'이라 할 수 있을까?
그리고 통계는 이런 1000명 중
어떻게 표본을 추출했느냐도 매우 중요한데,
아무리 95%의 신뢰수준의 최소 표본수를 만족했다 하더라도,
이는 최대한 적절하게 표본을 추출했을 때 95%라는 말이지
단순히 1000명을 무작위로 추출했다고 해서
그 통계의 신뢰 수준이 95%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한
이러한 신뢰 수준 95%의 통계는
지금에도 수 없이 사용되어지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보자면 그 중 5%는 신뢰할 수 없는
통계라는 리스크를 떠 안고 있는 셈이다.
우습게도 우리 '인간'은 이렇게 오만하다.
어쨋든 우리에게 95%라는 확률은
마치 100%처럼 다가오기 때문에
어쩌면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인식이 있기에
이런 사실에 대해서는 넘어가기로 하자.
정부가 참고 할 수 있는
'유력한 여론'으로 참고 할 수 있는 것은
여러가지가 있으나 그 중 대표적인것을 꼽으라면
1.시위
2.여론 조사
3.인터넷 커뮤니티 조사
크게 3가지 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이 3번의 경우 최근에 여론으로서 참고 할 수 있는
중요한 참고 방법으로 사용되어지고 있고,
'유력한 여론'을 환기 시키기위해,
'유력한 여론'을 만들기 위해 여러 멍청한 짓을 하기도 한다.
또한 3번에서 나타나는
the people들의 공간은 이전에 잠깐 언급했듯이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이곳에는 아무리 익명이라는 것으로
개인을 보호한다고 하더라도
다수가 이해할 수 없는,
그리고 사회 관습적으로 용납하지 않는 행위를 할 시에
그 행위가 정당하건, 정당하지 않건
다수가 개인에게 가해지는 철퇴에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또한 이러한 인터넷은 '익명의 공간'이여야 한다는
관습이 지배하기 때문에
이에 따라 비열하고, 정당하지 못하고, '자유'롭지 못한 행위들이
'익명'이라는 이름하에
도덕적 책임에 어느 정도 자유로워 지기 때문에
이곳은 고대 민주주의의
광장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없다.
어쨋든 이런 '유력한 여론'에서 나타나는 것들은
너무나도 적절하지 못하다.
이런 적절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나의 논지는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첫째, 정부가 보는 '유력한 여론'이
그들이 믿는 통계학에서 통계로부터 나오는 사실들이
정말로 the people들의 목소리인지 알 수 없다는 점
둘째, '유력한 여론'이
정말 수 많은 the people들의 목소리인 '여론'이라 할지라도
동의하지 않는 the people들에게
가해지는 탄압과 억압을 통해
입을 다물게 한다는 점
셋째, 이에 따라 '유력한 여론'이
충분히 비판받고, 고찰과 성찰을 통해 개선되고, 논의되어
보다 '진리'에 가까워질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점
넷째, 이는 밀이 제시한 '자유'와
그리고 현대인들이 자랑하는 자유 민주주의에서의
'자유'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는 점.
으로 나의 논지를 정리해볼 수 있다.
이에 어느정도 동의한다면,
우리는 이번을 통해 최종적으로 논의하고 싶은
주제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the people은
책임감으로부터 자유로워야 만하는가?
지금 부터가 사실 본론이라고 할 수있다.
나의 위의 논지를 통해
the people들에 대해 어느정도 동의 한다면
우리들은 드디어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the people들은 책임감으로 부터 자유로울수 있을까?
나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해보았지만,
책임감으로 부터 결코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결론 밖에 도달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인간'이기에 우리는 불안정한 존재다.
그런 불안정한 존재가 모인다고 한들
안정한 존재가 될 수 있을까?
그런 불안정한 '인간'들이 모여있는 국가는 어떠한가?
the people들이 살고 있는 국가는 안정한가?
안정하다면,
왜 국가 내부에서는 사회적 문제들이 끊이질 않는가?
그리고 그런 the people들이
살고 있는 국가는 외부적으로
왜 아직도 세계는 '종교의 자유'에 대해 인정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이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으며,
종교계 역시 이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데에도
자신들이 믿는 인격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전쟁을 하기도하고,
다른 종교를 자신들의 잣대로
이단과 사이비로 단정지으며, 이것을 옹호하고
자신들이 이단과 사이비로 단정지은 종교에 대해
마치 자신들을 포함한 The People들이
이에 충분히 의견을 나누고,동의한것 처럼
다른 개인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며,
'자유'에 대해서는 의심치않으면서
'자유'를 방만한 자유라고 오해하고,
자신의 '소유의 자유'를 침해당하면
마치 세상의 '정의'가 죽었다는 것 처럼 말하며,
'생각의 자유', '이념의 자유',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와 같은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자유'는
경우에 따라 침해하는 것에는 마땅하고, 당연하게 생각하며,
그런 이야기를 하는 개인을 다수가 억압하고 탄압하여
입을 다물게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며,
더 나아가
자신의 '자유'만을 너무 생각한 나머지,
다른 사람의 '자유'에 대해서는
왜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 것인가?
인간이 불안정한 존재인 이상
그 누구도 책임감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불안정하다라는 것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이 '부분적 진리'일 수는 있지만 '진리'는 아니다.
'진리'가 아님은 틀릴 수 있다는 것이고,
틀릴 수 있는 의견은 의견의 무게감에 따라
정해진 책임감으로 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정한 '인간'의 집합체들 중
오직 the people들은
왜 그런 책임감으로 부터 자유로워야 하는가?
the people만이 책임감에서 자유로워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그리고 자유로워야 한다면 그러한 이유는 정당한가?
나는 the people만이
책임감에서 자유로워야 하는 이유는 없으며,
그렇기에 the people들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 한다.
물론 자유로워야하며,
그에 대한 이유도 정당하다면
나는 나의 이러한 논지를 폐기할 준비가 언제든 되어있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정당한 이유를 들어본적이 없다.
그렇기에 나는 the people이
지금 처럼 책임감에서 자유로워야 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책임감도 물론 중요하지만,
더욱 더 중요한 것은
'유력한 여론'에 동의하지않는
the people들을 탄압하고 억압하여 철퇴를 내려
입을 열지 못하게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마 이러한 사실을 밀이 본다면,
그는 그들의 자손인 우리 현대인들에 대해 꾸짖을 것이며
그러한 사실에 매우 한탄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외치던 '자유'는
「어떠한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좀 더 정확히는 '어떤 한 진리로 여겨지는 사실'에 대해
반대론을 제시하는 것이
그것이 진리이던, 진리가 아니던, 아니면
둘 다 진리이던간에
그런 논의를 한다고 한들
'진리'는 훼손되지 않기 때문에
어떤 경우이던 간에
반대론을 제시하는 것은 정당하다.」
라고 외치고 있는 것처럼 나에게 들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제시한 '자유'가
전 세계인들이 공감하는 '자유'가 되었고,
지금에서도 밀의 '자유론'은 이야기되어지고 있으며,
학자들 사이에서 '자유'라는 것을 이야기할 때면
밀의 이름이 꼭 빠지지 않는다.
또한 나의 이런 의견 조차
그의 '자유'안에서는 정당하다.
만약 나의 비판에 대해
정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자유'를 옹호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런 '자유'가 어디가 잘 못 되었고,
정당하지 못 한지를 증명해야 할 것이다.
나는 한 개인으로서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가 제시한 '자유'는
내가 찾던 '자유'이고,
그의 '자유'에 공감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사회'로 부터,
그리고 '나를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나'로 부터
'자유'롭게 해줬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권위로서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싶은 개인들이 보호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쨋든 ,
the people이라 할지라도
그 구성원은 '인간'이기에
'인간'은 불안정 하기에,
불안정한 '인간'의 의견은 대개 '부분적 진리'이며
'진리'가 아니기 때문에,
자신이 내뱉은 의견에 대해 정해지는 무게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할 필요가 있으며,
the people들 또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기 전에
그런 리스크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the people들의 목소리인 '여론'에 대해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은 정당하지 않으며,
이에 몫은 '유력한 여론'을
지지한 the people들이 받아야 할 몫이다.
・결론
따라서 이번 에세이의 결론은
<the people들 또한 '인간'이기에,
'인간'보다 우월할수는 없기에,
the people들인 목소리인 '여론' 중
'여론'으로 인정받는 것은 '유력한 여론'이기 때문에
그런 '유력한 여론'을 주장하는 the people들은
책임감으로 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으며,
자유로워선 안된다.
하지만 이런 책임감에 대해, 리스크에 대해
현실에서 자유롭다는 사실과
그래야 된다는 인식은 정당하지 못하다
따라서 the people들의 '유력한 여론'에 대해
그러한 의견에 대해,
the people들은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있으며,
지금과 같이 그런 '유력한 여론'에 대해
반대론을 제시하는 the people들을
억압하고 탄압하는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따라서 그런 '유력한 여론'을 지지하는 the people들에게
책임감을 지게 할 수 있는 어떤 장치가 필요 하다>라고 결론 짓도록 하겠다.
결론이 조금 길 수 있으나,
이에 대한 것은 추후 줄이도록 하겠다.
하지만, 어떤 장치가 필요한지는 지금에 있어서는
해결책을 제시하기는 힘들다.
이는 아마 내가 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주제이다.
해결책의 직감을 떠 올린다면
아마 그 주제로 에세이를 또 쓰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에세이를 나의 개인 블로그에 올릴 예정이기 때문에
누군가는 나의 에세이를 볼지는 모르겠다.
만약 보고 있다면,
당신의 답은 어떠한가?
나의 논지에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건 그런것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에세이를 쓰는 이유는
다른 사람에게 나의 의견을 말하고,
설득 시키기 위해 작성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가 에세이를 씀으로써
나의 주장을 정리하고 보존하여,
나의 주장에 잘못된 점을 고쳐가면서
보다 '부분적 진리'에 다가가길 원하며,
이런 '부분적 진리'에 도달했다면,
나는 이를 나의 '철학책'에 넣어
시험해보고 싶은 것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사회에서도 정당하고,
사회 구성원들에게도 정당하다면
칸트가 <네 의지의 준칙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있도록 행위하라>
라고 말한대로,
이런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있는
후보군에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과거에 이런 글들을
개인 블로그에 업로드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잘못된 사회적 관습,
그리고 거기에서 나온 잘못된 인식을
해체 하는 것을 좋아하며,
이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그리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런 글들을 인터넷에 올린다는 사실은
어떤 사람에게는
이런 관습을 해체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으며,
이를 원하지 않는 다수의 가슴에는
비수가 꽂힐 것이며,
이런 비수에 의해 남겨진 상처에
책임을 비수를 꽂은 자에게 대한 분노로서
늘 그래왔듯이
다수에 의해 철퇴를 맞게 될 것임은
너무 나도 자명하며,
너무 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위험할 수 도 있는 이런 글을 올리면서
내가 전하고 싶은 말은
결코 나의 의견을 옹호하여,
다른 개인들이 나의 의견에 설득당하기를 원해서
그럼으로써 나의 '자아'를 만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의 논지를 밝힘으로써
나의 의견을 '자유'롭게 제시하여
이러한 주제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유용성을 증명하고 싶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한 개인이
나의 논지에 동의하던,
동의하지 않는 사실은 나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
물론 동의한다면 매우 기쁘겠지만,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런 주제는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불안정한 존재이며,
아무리 현대인들이 과거의 조상들보다 '우월'하다고 할 지라도,
그리고 그렇게 믿고 있을 지라도,
또한 자신들의 국가의 조상들을 버리고,
먼 고대의 그리스와
고대 로마의 정치 체계를 받아들여 이를 개선했다고 할지라도,
단 한번도 인류는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안정한 존재가 되어본 적이 없다.
또는 나의 논지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the people은 책임감으로 부터 자유로워야만하는가?
그렇다면 그런 the people만이 자유로워야만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주제로 각 개인들이 고찰해보길 바라는 바이다.
나는 누군가가 반대론을 제시해
나와 시각이 다른 관점에서의 '부분적 진리를 '이러한 것을 발견해,
제시해준다면 매우 기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의견이 정말로 정당하다면,
나는 나의 이러한 논지를 당장이라도
폐기할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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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 -
2020.05.27 '팔다리가 없어진 정부와 반쪽짜리 The People들'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