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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젝트 BEP ] 최종장 - 엔지니어로서의 마인드셋에 대해 : 우수한 엔지니어는 누구이고, 가져야할 마인드 셋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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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면서 이제 2025년도 얼마 남지 않은듯 하다.  조금 길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실제로 업로드 하는 것은 새해 이후가 될 가능성도 있으나  올해는 이 글로 마무리 해보려고 한다. 이제 이 최종장을 끝으로 이 프로젝트를 다소 마무리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전체적으로 글 자체가 부족한 부분이 여려 곳 보이지만,  이는 천천히 개선하기로 하고 일단 마무리를 잘 지어보려고 한다.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주니어 엔지니어(넓은 범위로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을 정리해 놓은 것 이며, 이를 전달하는 것에 주력을 했다. 정확히는 그 사이에 몇 번이나 직장은 바뀌었지만,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작게는 멘터,  크게는 주니어 교육에 활용하기 위한 초안이였다. 들어가기 앞서서 먼저 개발자는 무엇인가에서 부터 시작해서,  수학은 필요한가, 그리고 학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고, 그 다음으로 컴퓨터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가장 첫 장인 컴퓨터 개론에서 메모리 손실과 함께 설명하였다. 다음으로는 개발 방법론과 시스템 설계,  그리고 프로그래밍 언어에 대한 이야기로 간단하고 이론적인 이야기를 하였다. 눈치가 빠른 사람은 알 수 있듯이,  현실에서 가질 수 있는 몇 가지 의문으로 시작해서  컴퓨터라는 하드웨어 부터 시작해서,  프로젝트(개발 방법론), 설계, 프로그래밍 언어 순으로  일부러 점점 컴퓨터 세계로 들어가도록 구성을 해 놓았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자면, 알고리즘이 들어갈 수는 있겠으나  어디까지나 가볍게 전달하는대에 목적이 있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당장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 라고 생각 했기 때문이다. 먼저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시작 부터 모든 지식을 쌓을 수는 없다 이는 개발 영역에서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모든 것에는...

[ Essay - Intuition ] 자유 의지란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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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자유 의지란 존재하는가? 매우 흥미로운 논의가 아닐 수 없다. 자유 의지라는 단어에 대한  정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유 의지에 정의란 무엇인가? 이 대답에 평소대로  이전과 같이 옥스포드 사전의 사전적 의미부터 시작해  깎아내려가는 방식으로 할 수도 있으나  이번 만큼은  나의 정의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왜냐하면 이 단어 만큼 사람에 따라 정의가 다른 단어를 찾아보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시점에서 나는 자유 의지에 정의에  크게 두 가지로 인식하고 있다. 첫 번째,  자유 의지에서 자유에 대한 강도가 높아 매우 순수해서 사회적인 패러다임에서  벗어 날 수 있는 자유 의지 두 번째, 반대로 자유에 대한 강도를 낮춰서  사회적인 패러다임에 벗어 날 수는 없지만 그 내부에서에서 한정된 자유 의지 나는 전자라면 자유 의지란 존재할 수 없고  후자라면 자유 의지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정의: 자유의 강도가 사회의 패러다임보다 높은 경우 아마 이 첫 번째 정의가 아마  가장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자유 의지가 아닐까 싶다. 정말 순수하고 완벽한 자유 의지이다. 정말 모두가 가지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만 이러한 자유 의지야 말로  세상 모든 사람이 가지고 싶어하는  보물과도 같은 물건이다. 모든 시스템에서, 모든 패러다임에서 자유로워  이에 종속되지 않는 자유이다. 아마 자유라는 단어의 정의 중 가장 순수한 자유일 것 이다. 하지만 이는 현실성이 전혀 없다. 어떤 이유에서 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고 그것이 생존에 관련되었건 물질적인 이유가 되었건 유대감 등의 정서적인 이유가 되었건  서로를 필요로 한다. 아이는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하기 때문에 아이의 자유 의지는  존재할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할 수 밖에 없고 원시적인 입장에서...

[ 생각 ] 우리라는 단어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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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라는 단어에 대해 위화감을 느낀 적이 있는가? 아마 크게 느끼지 못할 것 이다. 특히 한국이라는 나라 특성 상 더더욱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스스로의 국가를 부를 때 매우 당연하게도 '우리'나라라고 부르기 때문이고 실제 생활에서도 우리라는 단어는  우리 반, 우리 집, 우리 회사, 우리 사회 등  꽤나 쉽게 사용 되기 때문이다. 즉, 적어도 한국에서는  우리라는 단어의 경계가 매우 모호하다. 다만 문제는  사회 문제가 이러한 단어의 경계가  모호함에 따라 나타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단어의 경계가 모호하니  사회에서 정말 가치가 큰 것들은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배려, 혁신, 용서, 나눔, 정의 등이 이러한 처지에 놓여있다. 이미 몇 가지는 찬란했던 빛을 잃어버린 것으로 보인다. 위에 언급 했던 배려를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배려란 쉽게 할 수 없는 행위이다. 애초에 마음에서 우러러나오는 진정한 배려란 쉽게 나올 수 없는 행동이다. (배려가 일상 생활에서 쉽게 나온다고  그리고 그래야만 한다고 믿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갑자기 현대에 들어와서 인류가  배려심이 넘쳐흐르게 되었다고 하기에는  근거를 찾기가 매우 힘들기에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배려를 하게 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향해 박수를 치거나 마음속으로 경외심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리가 아픈 노인이나 임산부는 물론이고 몸이 편치 않아 보이는 남성 까지  누가 봐도 불편한 기색이 보이는 사람에게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선뜻 자신이 앉고 있는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이런 배려에 속 한다. 물론 비교적 과거에는 말이다. 또한 전제 조건은  주변의 눈치를 살펴서 행동하거나 그러한 문화가 있지 않는 조건 하에서 이다. 만약에 다수의 사람이 눈치를 주거나  사회 문화에 의해 혹은  긴 시간 동안 주입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