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들은 일을 너무 열심히 한다.
이 말은 내가 한국인으로서의 티를 벗어나기 전까지는
이런 생각을 해보지도 그리고 하지도 못했던 것들 중에 하나 이다.
그리고 외국 생활을 지속하면서
한국인으로서 점점 벗어날 수록 강하게 느끼고 있는 것들 중에 하나 이기도 하다.
한국 사람들은 정말 일을 열심히 한다.
물론 이는 전체적인 입장에서는 좋은 것이다.
이겨서 전체적인 입장이라면 여러가지의 의미를 가질 수 있는데
작게는 프로젝트를 포함한 작은 공동체부터 시작해 회사,
그리고 크게는 하나의 사회나 나라까지도 의미할 수 있다.
이런 전체적인 입장에 있는 각 개인들에게는
무엇이 나쁘냐면서 어깨를 으쓱할지는 모르겠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며 말이다.
하지만, 이는 개인적으로는 매우 나쁜 인식이라고 생각하며
단기적으로 봤을때(전체적인 입장에서)는 매우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때는 매우 좋지 않은 선택이다.
왜냐하면 시간이 갈 수록 각 내부의 개인들의 엔트로피가
가속화되여 쌓여가면서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엔트로피가 쌓일 정도로 쌓여
최대로 팽창될 때, 개인들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그 공동체는 파멸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다니던 회사에 한국 신입이 들어온 적이 있었고,
우연히 같은 팀에서 일 한적이 있었다.
여느 다를바 없는 한국인들과 같이
그 친구도 일을 굉장히 열심히 했다.
여기서 열심히 했다는 의미는 받은 업무를 일찌감치 끝내고
바로 다른 일을 하려 했으며, 심지어 이를 야근까지 하며 처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재미있는 것은 그 후배도
야근을 좋아하는 사람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스스로가 야근하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는 것을 알고 있다.
물론 위에서 이야기 한대로
이는 전체적인 회사 입장에서는 매우 좋다.
누군가가 나서서 해준다는 것은 매우 반가울 소식이다.
작게 프로젝트 입장에서 본다면,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입장인 PM의 입장에서는 매우 반가울 것이다.
프로젝트를 빨리 끝내면 빨리 끝낼 수록
그리고 퀄리티가 좋으면 좋을 수록
기본적으로 위에 있는 입장인 PM의 평가는 높아지기 때문이다.
실제 프로젝트와 외부와의 연결고리는
일반적으로는 대게 PM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며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누가 얼마나 이 프로젝트에 기여했는지는 관심이 없으며
자신들의 생각대로 제품이 나오고 퍼포먼스만이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당연하면 당연한 것 이다.
어찌되었던 간에 이렇게 '열심히'일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PM에 입장에서는 오히려 박수를 치며 환영할 것이다.
하지만, 그 '열심히'하는 입장에서는 어떨까?
여기서 그 '열심히'일하는 사람이
열심히 한 만큼의 보상과 그리고 평가를 적절히 받고 있다면
그나마 좋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일반적인 경우는 그렇지 않으며,
이 또한 밑에서 일하는 입장에서 적절히 어필하지 않으면
자기가 한 만큼의 평가를 받기란 쉽지 않다.
설사 이런 적절한 보상과 평가를 받고 있다 하더라도
야근을 하면 할 수록 가까운 미래에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엔트로피로 쌓여
일상 생활에 불가능 할 정도에 이르러
엔트로피가 팽창되어 터지게 된다면
개인의 커리어를 이어갈 수 없게 되므로 매우 곤란한 상황이 되어버린다.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는 공동체는
개인들이 서서히 하나둘 무너지기 시작하게 될 것이고,
그 끝은 결국 필연적으로 공동체의 엔트로피로서 쌓여
공동체의 파멸로 이끌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하루 받은 과업 이외에는 추가적인 업무를 하지 않고,
그 외의 시간을 나를 위해 사용한다.
운이 좋게도 나는 it업계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하루 과업이 일찍 끝난다면 보고 하지 않고 공부를 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도 하고,에세이를 쓰기도 하며
일 관련해서 로직을 최적화 하기도 한다.
조금 컨디션이 안좋다면 조금 쉴때도 있다.
이 처럼 과업 외적인 시간은
나를 위해서 사용하려고 하는 편이다.
이는 나를 위해서 이기도 하지만,
내가 속해 있는
나를 고용하고 있는 회사를 위해서 이기도 하다.
물론 '너 말고 다른 사람은 얼마든지 있어'라고 생각하고 있는
회사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긴 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런 회사가 얼마나 갈 수 있겠는가?
특히 IT업계라면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하루 과업 이외에 일을 하지 않는것은 아니다.
마음에 드는 팀원이 곤란에 빠져 있다면
선뜻 도와주기도 하며,
역으로 내가 조금 곤란에 빠져있다면 도움을 받기도 한다.
또한 프로젝트의 일 관련으로 추가적으로 부탁을 받으면 하기도 한다.
물론 그게 돈이던 다른 것이던 간에 받는다.
혹은 내 스스로 그러할 가치가 있다면, 받지 않고 하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회사로 이야기해보자면
그리고 PM의 입장으로 서 이야기 해보자면
그들이 나의 건강이나 미래를 책임져주지 않기 때문이다.
프로젝트의 PM 입장에서 보자면,
지금 담당하고 있는 프로젝트만을 책임지지
그 후에 팀원들의 건강이나 미래 까지 생각해주고 책임져주지는 않는다.
또한 책임져주고 싶어도 책임져 줄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동일하게 회사 입장에서도
각 직원들의 건강을 책임질 의무는 없다.
개인의 건강은 회사 입장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솔직히 그렇게 많지는 않으며,
개인의 영역이기 때문에
책임져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건강에 영향을 주는 혹은 그의 준하는 일을 요구한다면,
이야기가 달라 진다.
회사 입장에서는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혹은 그 외적인 문제로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면
어찌되었던 이런 저런 변명을 하면서
책임을 회피하며, 계약을 하지 않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체적인 입장에 서있는 사람들이나
공동체에서는 개인의 건강을 챙겨주지 않음은 물론이고
일을 하다가 건강이 나뻐졌다고 한들 책임져주지는 않으며
이에 더해 미래 또한 챙겨주지 않기 때문에
개인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열심히' 할 이유는 크게 없고 본다.
예컨데 과업을 받았다면,
각 개인은 그 과업만 마쳤다면
솔직히 그 외의 일들은 해줄 의무 따윈 없다.
마치 전체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이나 공동체
그리고 회사가 각 개인들의 건강이나
미래를 책임 져주지 않는 것 처럼 말이다.
전체적인 입장, 공동체,
그리고 회사의 입장과 사정이 있듯이
각 개인도 입장과 사정이 있다.
회사의 입장과 사정 내세우거나 따르길 원한다면
그만한 보상이 주어져야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본적인 '신뢰'이고,
신뢰를 형성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다.
이를 무시한다면
이는 파트너 관계가 아닌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되고
결국 주인은 점점 부유해지지만
노예는 서서히 죽어가는 한쪽은 진보하지 못하는 결과를 맞이할 것 이다.
이는 현대인들이 그렇게도 싫어하는
과거 봉건제와 크게 다를바 없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러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그토록 싫어하고 혐오하는 봉건제의 귀족들과 같은 행동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결국에는 같은 결과를 낳게 되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받은 하루 과업이
예상보다 빨리 끝났다면
이는 위에서 나의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나를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나의 책임은 아니며,
과업을 할당한 사람과 그 위의 사람의 책임이다.
나하고는 사실 상관 없는 이야기 이다.
여기 까지 이야기하면
어떤 사람들에게는 매우 불편할지는 모르겠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들에게는 나의 이야기로서
'그러면 받은 과업 외에 어떤 일도 하지 않으면 누가 일을 하려고 하나?'라는
의문이 들지도 모르며,
어떤 사람들에게는 의문을 넘어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내비칠지는 모르겠다.
어쩌면은 그러한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속으로는 이런 글을 쓰는
나에게 욕을 하고 있을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은 언어로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동물이며
인생은 협상이지 않은가?
협상을 하면 된다.
그냥 간단하게 돈을 주거나
그에 준하는 것을 협상을 통해 해주면 된다.
단순하게 돈만 준다고하면
누가 일을 안하려고 하겠는가?
돈을 주기 싫다면 그 외적으로 원하는 것을 해주면 된다.
이 세상에는 돈을 얻기 위해
몸을 조금 버려가면서 일을 하는 사람은 차고 넘쳤다.
나는 도대체 왜 협상을 하려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귀찮기 때문일까?
그런 것이 귀찮다면 관리자의 역할을 내려놓거나
비지니스를 그만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왜 관리자가 평균적으로 높은 연봉을 받겠으며,
모든 직종에 관리자가 포함되어 있겠는가?
관리자가 하는 일이
대부분 각 구성원들과 협상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만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연봉이 높은 것이라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는 것은 관리자로서 직무를 맡았으면
귀찮다고 할게 아니라, 번거롭다고 할게 아니라
자신의 임무를 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관리자들은 타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아닌
자기 일에 대해 좀 더 책임감을 느낄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고 번거롭다며 회피하는 것은
자신이 맡은 바를 다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며
그가 받은 급여 또한 정당하지 못함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러하지 못하며,
이는 권위에 약한 동양권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뚜렷이 나타난다.
다시 그 한국인 친구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서
나는 이런 이야기를 그 친구에게 말해 줬다.
그 친구도 내 이야기에 수긍하는 것 같았고
그게 맞는 것 같다며 이야기를 해주었다.
하지만, 후에 그 친구를 살펴보면
이것이 쉽게 고쳐지지 않는 듯 보이며
이에 대해 조금 이야기 했을 때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행동하는 것 처럼 느꼈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이런 것은 이 친구 뿐만이 아니라
오랫동안 외국에서 일하는 한국인에게도
간혹 보이는 모습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서 나는 좋게 말해서
근면하다고는 생각하지만
나쁘게 말하면 노예 근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나라, 사회, 공동체, 회사 등은
지금에 와서는 주인과 노예보다는
파트너 관계라고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 한다.
뜻이 맞는다면 함께하고 맞지 않는다면
헤어지는 파트너일 뿐이다.
헤어진다고 해서 뜻이 맞지 않는다고 해서
배신하는 것이 아니다.
뜻이 맞지 않기 때문에 헤어지는 것 뿐이다.
상황에 따라 뜻이 맞는다면 얼마든지
파트너로서 행동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기회주의자와 같은 행동이라고
말할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은 파트너가 정확히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혼동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회주의자들은 자신 만의 이익을 추구하지만
건강한 파트너는 관계는
자신과 파트너의 이익 둘 다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물론 힘에 있어서 그러니깐
자본이나 지위, 명예와 같은 것을 따져보자면
일반적으로
나라, 사회, 공동체, 회사 등이 우위에 있는 것은 틀림 없다.
하지만, 우위에 있더라고 하더라도
개인과 공동체는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아닌
계약으로 묶인 파트너 관계이다.
어느 무책임한 사람들이 자주 말하는 것 처럼
결코 회사에서 '고용을 해주는 것'이 아니다.
회사는 일손이 필요했기에 고용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어째서 '고용을 해주는 것'으로
승화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자기 기만은 그만 두는 것이 좋다.
자기 기만은 스스로를 속일 뿐만 아니라
타인을 속이고 현실을 왜곡시키기 때문에 질이 매우 나쁘다.
또한 노동자는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서 이던
자신의 자아 성찰을 위해서 이던
단순히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이던간에
목적이야 어쨋든
일을 하기 위해 취업을 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서로 뜻이 맞기 때문에
회사와 노동자의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고,
파트너 관계가 되는 것이다.
이런 관계 속에서
회사가 고용을 해준다라는 식으로
마치 선심쓰듯이 이야기하거나
너 말고 일할 사람이 많으니
싫으면 말라 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
과연 파트너 관계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은 둘째 치고
올바른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고 있을까?
어떤 회사가 다른 회사와 파트너쉽 관계를 맺을 때
그런 무례한 말을 한다는 말인가?
그렇기에 파트너와 파트너 관계의 계약 답게
계약 외의 것들은 회사에서 책임질 필요가 없듯이
개인도 동일하게 계약 외의 것들은
개인이 책임질 필요는 없다.
또한 공동체가
IT 업계로 한정한다면,
회사보다 협상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훌륭한 엔지니어는
흔치 않게 보이며,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엘론 머스크와 같이
엄청난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개인들 또한 존재 하기 때문에
힘의 우위라는 것은 항상 나라가 사회가 공동체가
그리고 회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힘의 우위가 있건 없건
중요한 것은 노예와 주인의 모습이 아닌
협상하는 파트너 관계가 되야 한다는 것이다.
영원한 왕좌가 없듯이
영원한 갑과 을 또한 없기 때문이다.
가만 생각해보면 내가 28년동안 살았던
한국의 모습은 이런 파트너 관계보다는
노예와 주인과 유사한 관계가 많았던것 같다.
몇 년 전에 한국에서 유행했던 갑과 을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IT 패러다임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근면이 아니라, 효율성 이다.
단순히 공산품, 자동차와 같이 기계식 생산이 중요하던 시대였다면
근면이라는게 중요할지는 모르겠다.
노동자들을 굴리면 굴릴 수록
그 만큼 자동차와 공산품들이 쌓일 테니깐 말이다.
한창 소유의 욕망에 빠져 있던 현대인들이 많았던 시점에는
쌓일 틈도 없이 팔려 나갔으니깐 말이다.
하지만 이 마저도 대부분의 소유의 맛을 느껴본
현대인들에게 많은 자동차, 많은 공산품들은
자리만 차지하고 불편한 것들일 뿐이다.
하지만, IT 패러다임에서 살고 있는
지금의 현대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공산품이나 자동차가 아니다.
사회에 보다 편안하고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데에 좀 더 가치를 두고 있다.
그런 시대에서는 근면이 아닌 효율성이다.
흔히 말하는 시간 당 노동 생산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무엇을 제공하는 것 보다
어떻게 제공 해야하는 지에 대한 고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들은 그러니깐
현실의 좋은 솔루션들은 단순히 하루 8시간 앉아서
365일 필사적으로 일 한다고해서 나오는 것들이 아니다.
만약 어떤 사람들의 말대로 내 말이 틀렸다면,
세계에서 높은 근무 시간을 가지고 있는 나라에 손꼽히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매우 아쉽게도 좋은 솔루션들은
대부분 한국에는 없다.
물론 그런 관계가 좋다면
근면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좋다면 나는 딱히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이를 남에게 강요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는 내 주변의 같이 일하는
그리고 일을 했던 동료들 그렇게 일하면서
괴로워 하는 것을 볼 때 마다 안타까울 뿐이다.
한국이야 둘째 치더라도
적어도 내 주변 사람들이 행복하지는 않더라도
괴로워하지 않길 바라고
이런 주인과 노예 관계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2021.02.28
역 근처 스타벅스에서